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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 21 선정, 올해의 해외 영화 BEST 10 중에서... PART 1... [그린 나이트], [피닉스]
13  쭈니 2021.12.23 12:5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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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5월에 창간한 '씨네 21'은 '로드쇼', 스크린', '키노'와 함께 나의 최애 영화 잡지였다. 가끔은 내 영화적 취향과는 거리가 먼 예술 영화들을 집중적으로 소개하기도 했지만, 그 덕분에 나는 보지도 않은 예술 영화들을 마치 본 것처럼 친구들 앞에서 잘난척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꼴값'이지만, 당시에는 '나는 영화 전문가이다.'라는 쓸데없는 과시욕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한 과시욕도 20대 후반, 대학을 졸업하고 IMF에 직격탄을 맞으며 사라져 버렸지만...

암튼 며칠 전 우연히 웹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씨네 21 선정 2021년 베스트 무비'라는 기사를 봤다. 아직도 '씨네 21'이 살아있구나라는 반가움과 함께 선정된 영화 리스트를 봤다. 역시나 내 취향이 아닌 영화들도 많더라. 그중에서 해외 영화 BEST 10이 흥미로웠는데, 내가 본 영화가 2위 [스파이의 아내], 8위 [노매드랜드], 공동 9위 [쁘띠 마망] 이렇게 세 편이나 되었다. 흠... 내 영화적 취향이 어느덧 고급스러워진 것일까? 내 영화적 취향을 알아보기 위해서라도 BEST10에 올라와 있는 다른 세 영화도 찾아서 봤다. 그 주인공은 3위 [그린 나이트], 4위 [피닉스]이다.


[그린 나이트] - 일반적인 판타지의 문법을 무너뜨린... 그래서 한 번쯤 도전해 보고 싶은...

감독 : 데이빗 로워리

주연 : 데브 파텔, 알리시아 비칸데르, 조엘 에저튼, 숀 해리스

크리스마스이브, 아서왕(숀 해리스)과 원탁의 기사들의 파티에 녹색의 기사가 나타난다. 녹색의 기사는 자신과 대결을 해서 이기면 명예와 재물을 주겠다고 제안한다. 단, 1년 후 녹색 예배당에 찾아와 자신이 당했던 것과 똑같이 당해야 한다는 이상한 조건을 걸고... 이 제안에 아서왕의 조카 가웨인(데브 파텔)이 나선다. 그러자 녹색의 기사는 자신의 목을 아무런 저항 없이 가웨인 앞에 내놓고, 가웨인은 녹색의 기사의 목을 내리친다. 1년 후 약속된 시간이 되자 가웨인은 녹색의 기사가 기다리고 있는 녹색 예배당으로 떠난다. 자신이 녹색의 기사의 목을 내리쳤듯이, 녹색의 기사 또한 자신의 목을 내리칠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만 명예를 지키기 위해 다섯 가지 고난의 관문을 거치는 여정을 시작한다.

[그린 나이트]는 내용만 놓고 본다면 영락없이 블록버스터 판타지 영화이다. 아서왕이 등장하고, 주인공은 원탁의 기사 중 한 명인 가웨인이다. 게다가 녹색의 기사와 대결하기 위해 다섯 가지 고난의 관문을 거쳐야 하는 위험한 여정에 올라야 한다지 않은가. 주연진도 비록 S급 배우들은 아니지만 그래도 연기력에 대해서 만큼은 믿고 볼 수 있는 배우들로 채워져 있다. 그렇기에 이 영화를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판타지 영화로 기대를 하고 관람한 관객들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영화를 선택하기 이전에 감독의 필모그래피부터 살펴보는 것이 좋다. [그린 나이트]를 연출한 데이빗 로워리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보자. 디즈니의 어린이 판타지 영화 [피터와 드래곤]이 눈에 띄지만, 그의 대표작인 단연 [고스트 스토리]이다. [고스트 스토리]를 봤다면 잘 알 것이다. 데이빗 로워리 감독의 영화가 어떤지. 케이시 애플렉과 루니 마라가 주연을 맡은 [고스트 스토리]는 사고로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한 여자와 그 여자를 잊지 못하고 귀신이 된 남자의 이야기이다. 왠지 판타스틱할 것 같다고? 전혀 그렇지 않다. 영화는 고요하고, 철학적이며, 지루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아름답다. 그래서 참 이상한 영화다. [그린 나이트]가 정확히 그러하다.

가웨인은 녹색의 기사가 제시한 게임을 받아들인다. 게임의 법칙은 간단하다. 가웨인이 녹색의 기사를 물리치고 명예와 재물을 얻게 될 것. 하지만 1년 후 가웨인도 녹색의 기사가 당했던 것을 똑같이 당해야 할 것. 결국 이 법칙대로라면 가웨인은 녹색의 기사의 목을 내리쳐서는 안 된다. 그저 살짝 상처만 주고 승리를 선언하면 될 일이다. 그러면 1년 후 그 역시 아주 작은 상처로 승리의 대가를 치르면 되는 일이 아니던가. 하지만 명예욕에 사로잡힌 가웨인은 결코 해서는 안 될 짓을 저지른다. 녹색의 기사의 머리를 내리침으로써 1년 후 자신도 똑같이 머리가 내쳐질 위기에 처한 것. 녹색의 기사는 몸에서 머리가 분리되어도 웃으며 일어날 수 있지만, 인간에 불과한 가웨인에게는 그럴 능력이 없다. 결국 가웨인은 명예를 얻은 대신 1년 후 죽음이라는 시한부 인생을 선택한 셈이다.

1년은 금방 지나간다. 아서왕은 가웨인에게 명예를 지키기 위해 녹색의 기사와의 약속을 이행하라고 다그친다. 결국 가웨인은 그것이 죽음의 길인 줄 알면서도 녹색 예배당을 찾아 떠난다. 녹색 예배당으로 가는 도중 어린 강도단과 만나 모든 것을 빼앗기는 굴욕을 당하고, 목이 잘린 채 죽은 성 위니프레드의 한을 풀어주고, 어느 성에서 호화로운 대접을 받으며 성주(조엘 에저튼)와 성주의 아내(알리시아 비칸데르)에게 이상한 제안을 받기도 한다. 이 각각의 모험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관객 각자가 알아서 해석해야 할 문제이다. 흠... 나는 아무것도 해석하지 못하고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문제는 가웨인이 녹색 예배당에 도착하여 녹색의 기사와 마주하게 되면서이다. 영화는 두 가지 장면을 보여 준다. 만약 가웨인이 녹색의 기사와의 약속을 저버리고 도망친다면... 그는 아서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를 테지만 그 끝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 결국 가웨인은 약속대로 녹색의 기사에게 자신의 목을 내어 놓는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냐고? 그건 아무도 모른다. 이대로 가웨인의 목이 내리쳐져서 죽었을지도, 아니면 그는 용감한 선택을 통해 명예를 지키고 금의환향했을지도... 이런 걸 두고 아마 열린 결말이라고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해석은 관객 각자의 몫이다.

어렵다. 당연하다. 나는 이런 영화에 익숙하지 않다. 분명 익숙한 판타지 영화인데, 영화의 전개는 전혀 익숙하지 않고, 그 안에 내포된 의미들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그래서 매력적이다. 하긴 [고스트 스토리]도 그랬었다. 불의의 교통사고로 죽어서 귀신이 된 남자가 영겁의 시간 동안 같은 자리에서 사랑하는 여자를 기다린다는 내용이지만, 그렇게 단순한 내용 앞에 여러 함축적인 의미들이 어지럽게 나열되어 있었다. [그린 나이트]도 명예를 지키기 위해 위험한 여정에 나선 기사의 이야기라는 단순한 내용 앞에 여러 함축적인 의미들이 나열되어 있다. 자! 도전해 보자. 그저 영화적 재미만 포기하기만 하면 된다. 가끔은 이런 도전도 흥미롭지 않겠는가?


[피닉스] - 통쾌한 복수를 기대하지 마라. 그녀의 복수는 우아하다.

감독 : 크리스티안 펫졸드

주연 : 니나 호스, 로날드 제르필드

1945년 6월 아우슈비츠 생존자 넬리((니나 호스)가 친구 레네의 도움으로 고향에 돌아온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은 심하게 훼손된 상태여서 전혀 다른 얼굴로 성형 수술을 하게 된다. 서서히 상처에서 회복되어 가던 넬리는 남편 조니(로날드 제르필드)를 찾으려 하지만 레네는 조니가 그녀를 배신했다며 찾지 말라고 조언한다. 조니를 너무나도 사랑했던 넬리는 레네의 말을 믿지 못하고 결국 조니를 찾아내지만, 조니는 넬리의 바뀐 얼굴 때문에 알아보지 못한다. 급기야 조니는 넬리에게 자신의 아내 행세를 해달라고 제안을 하기까지 하는데... 조니가 원하는 것은 넬리가 물려받을 거액의 상속 재산. 조니가 정말 자신을 배신했는지 알 수 없었던 넬리는 조니의 계획에 맞춰주며 그의 진심을 떠본다.

사실 내가 가장 피하는 영화는 공포 영화와 더불어 제2차 세계대전을 소재로 한 전쟁 영화이다. 특히 나치의 유대인 학살 관련 영화는 도저히 볼 수가 없다. 어떻게 사람의 탈을 쓰고 저런 끔찍한 만행을 저지를 수가 있는지... 엄밀하게 따진다면 [피닉스]도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소재로 한 전쟁 영화이다. 하지만 [피닉스]는 조금 다르다. 넬리가 아우슈비츠에서 겪는 끔찍한 만행은 영화 초반 그녀의 훼손된 얼굴로 마무리된다. 그 대신 넬리와 그녀의 남편 조니의 관계를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조니를 향한 사랑으로 아우슈비츠를 견뎌낸 넬리는 성형 수술을 해야 한다는 의사의 말에 예전 자신의 얼굴을 고집한다. 얼굴이 바뀌면 조니가 알아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성형 수술 후 회복하는 와중에도 혼자 조니를 찾아 밤거리를 헤매다가 험한 꼴을 당하기도 한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조니를 만나지만 조니는 그녀를 알아보지 못한다. 그는 넬리가 아우슈비츠에서 죽었다고 확신한다. 여기에서 넬리는 첫 번째 의심을 했어야 한다. 만약 조니가 넬리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어째서 그녀의 죽음을 확신했을까? 사랑하는 사람이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아주 작은 가능성 하나만으로도 희망을 안고 사는 사람들을 생각한다면 조니의 확신은 그가 넬리를 사랑하고 있지 않는다는 반증과도 같다.

하지만 바보 같은 넬리는 조니를 철석같이 믿는다. 고작 얼굴 하나 바뀌었다고 그녀를 알아보지도 못하는 그를 믿는 그녀의 모습은 영화 중반까지 고구마 같은 답답함을 안겨준다. 급기야 조니의 바보 같은 계획 아래 가짜 넬리 행세를 하면서도 레네에게 조니의 처음 만난 것 같은 설렘을 느낀다며 어처구니없는 말을 한다. 그때쯤이면 넬리는 조니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자신의 유산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넬리는 상관없다는 태도를 보인다. 그런 넬리의 모습은 사랑에 눈이 멀어 진실을 보지 못하는 전형적인 바보이다.

넬리가 진실을 바라보기 시작한 것은 레네의 죽음 덕분이다. 넬리만큼이나 혹독한 고난을 겪었을 것이라 생각되는 레네는 얼굴에 큰 부상을 당한 넬리와는 달리, 마음에 부상을 당한다. 얼굴의 부상은 성형 수술로 치유가 될 수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부상은 치유가 불가능하다. 어쩌면 그렇기에 레네는 더욱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 건립 계획에 매달렸는지도 모른다. 넬리가 받은 유산은 유대인 국가 건립에 중요하게 쓰일 것이라는 희망을 안은 채 말이다.

그러나 넬리는 유대인 국가 건립에 관심이 없다. 그녀는 오로지 조니와의 사랑 회복에만 매달린다. 이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유산을 조니에게 모두 갖다 받쳐도 상관없다는 태도이다. 레네의 자살은 바로 그러한 넬리의 무책임에서 비롯된다. 유대인 국가 건립이라는 큰 뜻을 안고 마음의 상처를 견뎌냈던 그녀는 결국 넬리의 바보 같은 사랑 때문에 그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되자 삶의 의미를 잃고 죽음을 선택한다. 넬리의 회복을 헌신적으로 도와준 레네. 그녀의 죽음은 넬리의 바보 같은 사랑 때문이다.

레네의 죽음으로 넬리는 드디어 진실을 똑바로 쳐다본다. 그리고 조니가 그토록 원했던 계획의 마지막 순간 조니를 무너뜨린다. 레네가 선물은 총도 필요 없다. 레네가 죽으면서 남겨준 이혼 서류도 무의미하다. 그저 조니 앞에서 자신의 목소리로 노래를 하는 것뿐이다. 얼굴은 바뀌었지만 목소리를 변함이 없었기에... 넬리의 노래를 듣던 조니의 표정 변화, 그러한 조니를 혼자 남겨두고 문밖으로 나서는 넬리의 마지막 모습. 이처럼 우아한 복수가 있을 수 있을까? [트랜짓]으로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떠나야 하는 한 남자의 행운과 불행이 얽혀 있는 여정을 독특한 시선으로 보여줬던 크리스티안 펫졸드 감독은 [피닉스]에서도 한 여자의 복수를 아름답게 담아냈다. 이쯤 되니 씨네 21 올해의 해외 영화 BEST 10에서 7위에 오른 크리스티안 펫졸드 감독의 영화 [운디네]도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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