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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 - 단순화된 캐릭터와 스토리 전개, 성인 관객에게도 감동을 안겨주던 예전의 픽사가 그립다.
13  쭈니 2021.06.18 17:20:28
조회 201 댓글 0 신고

감독 : 엔리코 카사로사

주연 : 제이콥 트렘블레이, 잭 딜런 그레이저, 엠마 버만

메가박스 오리지널 티켓은 나의 강박이 되어 간다.

어릴 때부터 나는 무언가 수집하는 것을 좋아했다. 해태제과에서 홈런콘을 먹으면 주던 야구 카드를 수집하느라 용돈만 생기면 바닐라 맛 홈런콘만 사 먹었었고(어릴 적에 하도 먹어서 지금은 바닐라 맛 아이스크림을 좋아하지 않는다.) 영화를 좋아하기 시작한 후로는 영화 신문 광고, 영화 전단지를 십수 년간 모았었다. 영화가 새로 개봉할 때마다 극장이 몰려 있는 종로를 배회했고, 영화 신문 광고를 모으기 위해 보지도 않던 신문을 구독했다. 그렇게 수집이라는 나의 취미는 어느 순간부터 스트레스가 되었다. 그래서 모두 끊었다. 취미가 즐거움이 아닌 스트레스가 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취미일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나는 내 성격을 안다. 뭔가에 한번 빠지면 강박이라고 할 수도 있을 정도로 집착한다는 것을. 그래서 새로운 강박이 생기지 않도록 노력한다. 그런데 2020년 1월, 메가박스에서 [스타워즈 :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를 본 후 받은 메가박스 오리지널 티켓이 내 마음을 사로잡아 버렸다. 메가박스 오리지널 티켓을 모으는 것은 쉬워 보였다. 한 달에 한, 두 편의 영화만이 오리지널 티켓으로 발매가 되고, 그런 영화는 대부분 흥행성이 보장된 영화들이니 나도 극장에서 볼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그냥 영화도 보고, 오리지널 티켓도 받아오면 되는 것이다. 이건 나에게 새로운 강박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지난 1월 [소울]의 오리지널 티켓을 받지 못하는 그 순간부터 모든 것이 바뀌었다. 개봉 주말에 봤음에도 불구하고 오리지널 티켓이 매진되었다는 말을 들은 나는 충격에 빠졌고, 그날 이후 오리지널 티켓이 발매된 영화는 개봉 당일에 봐야 한다는 강박에 빠져 버렸다. [루카]도 그러했다. [소울]과 같은 픽사 애니메이션이라는 사실이 나를 더욱 불안하게 했고, 결국 나는 이 영화를 보기 위해 주말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개봉 당일 혼자 극장으로 향해 기어코 [루카]의 오리지널 티켓을 손에 넣었다. 오리지널 티켓을 들고 싱글벙글하다가 문득 오리지널 티켓이 발매된 영화가 개봉할 때마다 이래야만 하는지, 살짝 걱정이 되더라.

편리한 설정으로 긴장감보다 편안함이 느껴지다.

[루카]의 배경은 이탈리아 리비에라의 작은 해변 마을이다. 평화로운 이 마을에는 한 가지 걱정거리가 있는데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작은 섬 주변에 무시무시한 바다 괴물이 출몰한다는 사실이다. 마을 사람들은 바다 괴물을 무서워하면서도 나타나기만 하면 잡아 죽이겠다고 벼르고 있지만 막상 바다 괴물을 정확하게 본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이 무서워하는 바다 괴물은 사실 전혀 위협적이지 않은, 오히려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존재들이다. 그들도 인간을 두려워하며 바닷속에서 나름의 사회를 형성하며 평화롭게 살아간다.

영화의 주인공인 '루카'(제이콥 트렘블레이)는 인간 세상에 대한 호기심은 많지만 소심한 성격 탓에 모험을 주저하는 바다 괴물 소년이다. 언제나 반복되는 따분한 바닷속 생활과는 달리, 뭔가 새로움이 가득할 것 같은 바다 밖 인간 세상을 동경하는 '루카'. 하지만 '루카'의 어머니인 다니엘라(마야 루돌프)는 인간 세상 말만 나와도 버럭 화를 내며 위험하니 절대로 가까이해서는 안 된다고 윽박지른다. 그러한 상황에서 '루카'는 자칭 인간 세상 전문가인 알베르토(잭 딜런 그레이저)와 만나게 되고, 삼촌이 살고 있는 심해로 쫓겨날 위기에 처한 '루카'는 가출하여 알베르토와 함께 인간 세상으로 모험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흠... 뭐랄까 스토리 전개가 굉장히 단순하다. 바다 괴물 소년이라는 설정을 빼면 1991년 국내에 개봉했던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명작 [인어 공주]가 떠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인어 공주]의 주인공 에리얼은 인간 세상으로 가기 위해 마녀 우슬라와 거래를 하여 목소리를 빼앗기는 대신 인간의 다리를 얻었었다. 그와는 달리 [루카]의 바다 괴물들은 물 밖으로 나가면 자연스럽게 인간의 모습으로 변신을 한다. 굉장히 편리한 설정이다. 30년 전 에리얼에게도 이런 능력이 있었다면 어쩌면 [인어 공주] 또한 스토리 전개가 굉장히 단순해질 수도 있었겠다. '루카'와 알베르토에게 주어진 유일한 난관은 물에 닿으면 안 된다는 것뿐이다. 물에 닿는다고 해도 몸에 닿은 물기만 털어내면 언제든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변신을 하니, 인간 마을을 활보하는 바다 괴물을 보면서도 긴장감보다 편안함이 느껴졌다.

단순화된 캐릭터와 스토리 전개

[인어 공주]의 에리얼이 마녀 우슬라와의 거래를 무릅쓰고 위험천만한 인간 세상으로 발을 내디딘 것은 사랑 때문이었다. 사랑은 모든 이성을 마비시키는 강력한 마약이기에 [인어 공주]를 보면서 에리얼의 용감한 모험에 박수를 보낼 수가 있었다. 그렇다면 '루카'와 알베르토는 왜 모두가 말리는 인간 세상으로 나가려 하는 것일까? 단순한 호기심? 아니면 '루카'를 심해로 보내려는 다니엘라에 대한 반항심? 뭔가 부족하다. 그래서 제시된 것이 스쿠터 '베스파'이다. '루카'와 알베르토가 급속도로 가까워질 수 있었던 것도 '베스파'라는 공통의 관심사가 있었기 때문인데, 알베르토가 모은 잡동사니로 '베스파'를 만들어 보지만 짝퉁 '베스파'로 그들은 만족할 수가 없었다. 결국 '루카'와 알베르토는 로망을 이루기 위해 인간 마을에 도착한다.

솔직히 약간 억지스럽긴 하다. 인간 마을에 가면 어떻게 해서든 '베스파'를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이라 믿는 '루카'와 알베르토의 순진함을 그렇다 치더라도, 때마침 열리는 마을 대회, 그리고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마을 대회 우승에 목말라 있는 줄리아(엠마 버만)가 '루카'와 알베르토를 도와주고 함께 팀을 짜는 것도 억지스럽다. 수영, 파스타 빨리 먹기, 자전거 타기로 이루어진 대회에서 '루카'와 알베르토는 우승 상금으로 '베스파'를 사고 싶어 하고, 줄리아는 우승하여 악의 축이라 할 수 있는 6년 연속 우승자 에르콜레의 공포 시대를 막 내리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자전거를 전혀 타지 못하는 '루카'와 파스타를 먹어 본적도 없는 알베르토와 팀을 이룬다는 것이 과연 줄리아의 목표에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 차라리 예전처럼 줄리아 혼자 대회에 나서거나, 거리의 아무나 붙잡고 함께 팀을 짜자고 하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루카]에서 유일한 빌런이라 할 수 있는 에르콜레의 캐릭터도 조금 이상하다. 에르콜레는 대회 6년 연속 우승자이기 때문에 마을에서 으스대며 자기 자신을 과시한다. 하지만 대회라는 것이 에르콜레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부하들이 수영과 파스타 먹기를 해줬기 때문에 에르콜레가 자전거 타기에서 우승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 마치 에르콜레 혼자 다 한 것처럼 군다. 마을의 다른 아이들이 에르콜레를 무서워하는 것도 이해가 안 되고, 마을의 어른들이 에르콜레의 만행을 모르는 척하는 것도 이해가 안 된다.

어린이 관객은 참 좋아하겠더라.

물론 [루카]는 어린이 애니메이션이다. 그렇기에 어린이 관객이 보고 더욱 재미있게 즐길 수 있도록 캐릭터는 이분법으로 나누고, 스토리는 단순화시키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픽사 애니메이션이 명성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어린이 관객뿐만 아니라 성인 관객도 재미있게 즐기며 감동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월-E]와 [업], [인사이드 아웃]을 보며 느꼈던 감동과 눈물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런데 [루카]는 그것이 부족하다. 분명 1시간 35분 동안 재미있게 보긴 했는데 픽사 애니메이션을 보고 나서 느껴졌던 감동의 여운이 [루카]에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사실 비슷한 아쉬움을 [소울]에서도 느꼈었다. [소울]의 경우 재즈 뮤지션을 꿈꾸었던 조 가드너(제이미 폭스)가 억울한 죽음을 맞은 후 우연히 태어나기 전 세상에 떨어지면서 겪게 되는 모험을 그렸다. 영화의 소재, 그리고 삶의 소중함을 담은 주제 등은 분명 어린이 관객에게 너무 어렵게 느껴질만한, 전형적인 성인을 위한 애니메이션이었다.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나는 [소울]에 특별한 감동을 느끼지 못했다. 너무 억지스러운 스토리 전개가 나의 감동을 방해한 것이다. (오리지널 티켓을 받지 못해 기분이 상했기 때문이라고 해도 할 말은 없지만...)

[소울]이 너무 억지스러운 스토리 전개로 나를 실망시켰다면 [루카]는 너무 단순한 스토리 전개로 나를 실망시킨 셈이다. 대회를 앞둔 '루카'와 알베르토의 갈등, 정체가 드러나면서 벌어지는 위기, 그리고 바다 괴물을 받아들이는 마을 사람들의 포용력, 이 모든 것은 영화를 보기 전에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오히려 모든 갈등이 너무 순순히 풀려 맥이 풀릴 정도였다. 그렇기에 영화를 보고 나면 훈훈함을 느낄 수 있을지언정, 특별한 감동은 부족하다. 어쩌면 어린이 애니메이션에서 훈훈함을 느꼈다는 점만으로도 대단하지만 픽사가 지금까지 우리에게 보여준 놀라움에 비한다면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실렌시오 브루노!!!'

물론 나의 아쉬움은 픽사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소울]에서도 밝혔지만 픽사라는 브랜드에 대한 기대가 워낙 높았기 때문에 웬만한 완성도로는 만족을 못 하는 것이다. 그만큼 1995년 [토이 스토리]로부터 시작해서 애니메이션의 생태계를 셀 애니메이션에서 3D 애니메이션으로 바꿔버린 픽사의 위대함은 강력한 것이었다. 미안하지만 픽사 애니메이션의 후발 주자들은 좀 더 분발해야 한다. 한껏 높아진 기대감을 채우려면 보통의 완성도로는 어림없다. 부담스럽겠지만 그것이 픽사 애니메이션의 숙명이다.

자! [루카]에서 픽사라는 브랜드를 지워 보자. 그리고 영화 그 자체로만 바라보자. 그렇다면 [루카]는 분명 꽤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어린이 애니메이션이 된다.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하면 안 된다는 올바른 교훈을 자녀들에게 안겨줄 수도 있고, 바다 괴물이라는 귀여운 캐릭터로 자녀들의 환심을 살 수도 있다. 특히 코로나19 때문에 여행이 제한된 상황에서 지중해의 아름다운 자연 풍광을 영화로나마 즐길 수 있다는 것은 색다른 즐거움이기도 하다. 요즘 랜선 여행이 유행이라던데, [루카]는 극장이라는 비교적 안전한 공간에서 이탈리아의 지중해를 커다란 화면 속에서 아름다운 색채와 함께 즐길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실렌시오 브루노!!!' 소심한 '루카'에게 알베르토가 알려준 마법의 주문이다. 새로운 모험을 주저하는 마음속 두려움의 이름을 브루노라 지칭하고, 브루노가 튀어나오려 할 때마다 '실렌시오 브루노'를 외치며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이다. ('실렌시오 브루노'는 '닥쳐 브루노'라는 뜻인데 추억의 판타지 영화 '해리 포터'에서 '입 닥쳐 말포이'를 연상시키는 쾌감을 안겨준다.) 코로나19로 한껏 위축된 우리에게 꼭 필요한 주문이 아닐까? 물론 브루노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과 그 주변 사람이라면 이 주문을 쓰면 안 되겠지만... ^^

P.S. [루카]에는 엔딩 크레딧이 전부 올라가고 나서 1개의 쿠키 영상이 있다. 개봉 당일에 봤기에 영화를 보기 전 '루카 쿠키영상'으로 검색을 해도 결과가 나오지 않아 검색 결과가 나오지 않아 난감했는데, 영화가 끝나고 아무도 일어나지 않고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길래 나도 덩달아 [루카]의 쿠키 영상을 볼 수가 있었다. 다행이다. 못 보고 나왔다면 한동안 억울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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