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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약자인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산다는 것은... [아이], [세자매]
13  쭈니 2021.05.17 16:39:55
조회 119 댓글 1 신고

요즘 대한민국은 젠더 이슈가 화제이다. 나는 남성이지만 페미니즘을 지지한다. 하지만 페미니즘이 여성 우월, 남성 혐오로 변질되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시대가 바뀌었고, 여성의 지위가 많이 향상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약자임을 인정하고 있으며, 사회에서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대접을 받을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이 또 다른 차별이 되어서는 안 된다. 남성과 여성은 서로 적대하며 싸워야 하는 존재가 아닌, 서로 의지하는 상호보완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내가 소개할 두 편의 영화는 사회적 약자인 여성의 삶을 그린 영화이다. 이 영화에서 남성은 무조건적인 가해자가 아니며, 여성은 무조건적인 희생자도 아니다. 그런 면에서 [아이]와 [세자매]는 꽤 의미가 있는 영화가 아닐까 싶다.


[아이] - 두 여성의 암울한 상황을 낙천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다.

감독 : 김현탁

주연 : 김향기, 류현경, 염혜란

고아원 출신인 아영(김향기)은 유치원 교사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간다. 하지만 정부 지원금을 받는다는 이유로 알바 자리에서 쫓겨나게 되면서 생활이 막막하기만 하다. 그때 고아원 친구가 아영에게 딱 알맞은 알바라며 홀로 생후 6개월 된 아들 혁이를 키우는 초보 엄마 영채(류현경)의 베이비시터 자리를 소개해 준다. 남편이 일찍 죽고 혼자 혁이를 키우기 위해 술집에서 일을 하는 영채. 아영 덕분에 조금씩 안정을 되찾아가는 와중에 사고가 발생한다. 혁이가 아기 침대에서 떨어진 것. 영채는 이 모든 것이 아영의 잘못이라며 손해배상 소송을 걸지만 사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혁이가 아기 침대에서 떨어진 것은 자신의 잘못이라는 사실을... 결국 영채는 혁이를 불법 입양사인 현숙(박옥출)에게 맡겨 버리는데...

고아원 출신의 사회 초년생 아영과 술집에서 일하는 싱글맘 영채. [아이]는 두 주연 캐릭터만으로도 영화의 분위기를 가늠하게 만든다. 아영과 영채는 굉장히 힘든 하루하루를 보낼 것이다. 그들에겐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없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부모의 도움 없이 사회에 첫걸음을 내디뎌야 하는 아영과, 남편의 도움 없이 혼자 돈벌이와 육아를 책임져야 하는 영채.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있어도 힘든 세상에서 그들은 모든 풍파를 혼자 감당해야 한다. 게다가 편견 가득한 시선도 감내해야 하니 영화의 분위기는 당연히 축 늘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의외로 [아이]의 분위기는 밝은 편이다. 아영에게는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없지만 친구들이 있다. 비록 사회는 그들을 가족으로 인정해 주지 않았고, 그렇기에 혼자 쓸쓸히 죽어간 친구의 장례식조차 치러줄 수 없지만 그래도 그들은 가끔 서로에게 짜증을 부리다가도 결국엔 서로에게 힘을 되어 준다. 영채에게는 술집 주인인 미자(염혜란)가 가족 같은 존재이다. 혁이의 분유값이라도 벌겠다며 아둥바둥하는 영채를 미자는 살뜰히 챙기며, 때론 누나 같고, 때론 엄마 같은 존재가 되어 준다.

영채는 두 번의 유혹과 마주한다. 첫 번째 유혹은 자신의 잘못으로 혁이가 다쳤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책임을 아영에게 떠넘기고 급기야 손해배상 소송까지 건 것이다. 아마도 혁이의 병원비라는 현실적인 문제와 책임을 회피하고자 하는 정신적인 문제가 합쳐진 선택일 것이다. 우린 가끔 자신의 잘못을 부모 탓으로 돌린다. 그런데 영채에겐 그런 부모가 곁에 없으니 결국 아영에게 투정을 부린 것이다. 물론 이 첫 번째 유혹에서 영채를 벗어난다. 아영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기에는 양심이 허락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두 번째 유혹은 혁이를 현숙에게 맡겨 버리는 것이다. 영채는 자신은 좋은 엄마가 될 수 없으니 차라리 혁이가 좋은 가정에 입양이 된다면 그것이 오히려 혁이를 위한 선택이라며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한다. 이러한 두 번째 유혹은 아영 덕분에 벗어나게 된다. 아영이 혁이를 되찾아오는 과정에서도 이 영화의 낙천적인 시선을 느낄 수가 있다. 과연 영화가 아닌 현실이라면 아영은 혁이를 되찾아올 수 있을까? 실제로 불법 입양사를 본 적이 없지만 돈을 위해 아기를 사고파는 사람이 영화에서처럼 양심적일 리가 없다.

모든 부분에서 [아이]는 굉장히 낙천적인 영화이다. 술집 주인이 미자처럼 자신의 종업원을 살뜰하게 챙기는 사람은 몇이나 있을까? 아니, 그보다도 아영처럼 헌신적인 베이비시터를 만날 수가 있을까? 자신의 돈벌이인 아기를 순순히 넘겨주는 불법 입양사의 존재는 또 어떻고... 영채 입장에서는 남편 복은 없을지 몰라도 주변 사람 복은 차고 넘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술집 노래방에서 혁이를 위해 동요를 부르는 영채, 아영, 미자의 모습은 훈훈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의 미래는 앞으로도 막막할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서로 힘이 되는 친구를 만났으니 조금은 나아질 것이다. 영화가 너무 낙천적이기는 하지만 그 덕분에 부담 없이 영화를 즐길 수는 있었다.


[세자매] - 너무 과장되게 그려진 '세자매'의 삶. 그래도 마지막 부분은 후련하다.

감독 : 이승원

주연 : 문소리, 김선영, 장윤주

미연(문소리)의 삶은 완벽해 보인다. 대학교수인 남편 동욱(조한철)과 교회 집사라는 사회적 위치, 그리고 서울 도심의 아파트와 잘 자라고 있는 아들과 딸까지. 그런 미연의 인생에서 딱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문제적 동생 미옥(장윤주)과 자존감 제로인 언니 희숙(김선영)이다. 방송 작가인 미옥은 헌신적인 남편 상준(현봉식)을 두고 있지만 술 중독에 어른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미숙하다. 그와는 달리 암 선고를 받은 희숙은 남편과 이혼하고 딸 보미(김가희)에게도 무시당하지만 언제나 미안하다며 미소를 잃지 않는 소심 덩어리이다. 완벽한 삶을 살고 있는 미연조차 동욱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되면서 '세자매'는 각자의 문제를 떠안고 아버지의 생신을 위해 고향을 방문하게 되는데... 과연 그들의 고향 방문은 순탄하게 마무리될까?

[아이]가 굉장히 낙천적인 영화라면 [세자매]는 굉장히 과장된 영화이다. 이승원 감독은 '세자매'인 희숙, 미연, 미옥의 캐릭터를 과장되게 그려 넣었다. 이 세 캐릭터 중에서 그나마 현실적인 캐릭터라고는 미연밖에 없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며 타고난 가식 덩어리인 미연. 나도 미연과 같은 가식적인 사람을 몇 명 본 적이 있기에 (우연히도 그들은 모두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문소리의 천연덕스러운 연기로 인하여 완성된 미연을 보며 내가 아는 사람들이 생각나서 살포시 웃을 수가 있었다.

그와는 달리 희숙과 미옥의 캐릭터는 현실에 저런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과장되었다. 가족에게 무시당해도 실실 웃으며 미안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희숙은 아무리 영화라고 하더라도 너무 답답해 미칠 지경인 캐릭터이다. 그와는 반대로 미옥은 무슨 만화 주인공 같다. 헌신적인 남편 상준을 무시하고 매일 술에 취해 난동을 피우는 그녀는 내 개인적인 심정으로는 정신병원에 처넣고 싶을 정도였다. 이렇게 비현실적인 캐릭터가 난무하니 영화에 공감을 할 수가 없었고, 오히려 답답함과 짜증만 차곡차곡 쌓여만 갔다.

하지만 그러한 답답함과 짜증은 영화 후반부에 싹 날아가 버린다. 바람을 피운 동욱에게 '이혼도 능력이 있어야 하는 거야.'라는 미연의 일침을 시작으로 영화 내내 차곡차곡 쌓여만 갔던 고구마는 조금씩 해소가 된다. 특히 아버지의 생일 파티에서 목사와 함께 기도를 하는 아버지에게 오줌을 갈겨 버리는 '세자매'의 막냇동생 진섭(김성민)의 돌발 행동은 사이다의 시작이다. 가식 덩어리인 미연이 아버지에게 사과하라고 요구하고, 엄마를 무시하던 보미가 할아버지한테 어른이 되어서 사과 하나 제대로 못하냐고 따지는 장면은 정말 속이 후련하더라.

그렇다. 이 모든 문제의 발단은 아버지의 폭력에서 비롯되었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지만 내가 어렸을 적에만 하더라도 아버지에게 참 많이 맞았었다. 특히 아버지가 술을 드시는 날은 온 가족이 긴장 상태였다. 그리고 그땐 그것이 당연한 줄 알았다. 아버지의 매는 사랑의 매라고 생각했으니까. 희숙이 자존감이 없는 이유도, 미옥이 철이 덜 든 이유도, 미연이 보호자 역할을 자처하며 가식 덩어리가 된 이유도 모두 아버지의 잘못된 가정 폭력 때문이다. 과거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도망친 어린 미연과 미옥은 동네 사람들에게 아버지를 경찰에 신고해달라고 부탁하다가 혼만 난다. 그들은 미연과 미옥에게 무조건 잘못했다고 엎드려 빌라고 충고한다. 가정 폭력에 대한 그러한 인식이 '세자매'를 괴짜로 만든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아버지는 가족들에게 사과를 했을까? 우습게도 아버지는 가족이 아닌 목사에게 사과한다. 왜 정작 사과해야 할 대상 앞에서는 입도 뻥긋 못하고 사과하지 않아도 될 대상에게 사과를 하는 것일까? 아마도 아버지는 과거의 잘못을 하나님에게 용서받았다고 우길 것이다. 참 우스운 일이다. 용서는 피해자에게 받는 것이다. 피해자가 용서를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용서를 받았다고 주장할 수 있단 말인가. ([밀양]의 전도연의 울부짖음이 떠오른다.) 가정 폭력은 비단 여성만의 문제는 아니다. [세자매]에서도 가정 폭력의 가장 큰 피해자는 막내아들 진섭이었다. 비록 그들은 결국 아버지의 사과를 받지 못했다. 하지만 아버지에게 멋지게 한 방을 날려 버렸다. 그날 이후 그들은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지 않았을까? 어린 시절 그렇게 무서웠던 아버지도 이제 아무런 힘이 없는 늙은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테니... 중반까지는 고구마 같은 영화였지만 후반부에서 시원하게 사이다를 날려 버리는 이승원 감독의 뚝심이 돋보이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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