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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경이 밟기 ​/최정
뚜르 2023.02.20 06:45:37
조회 154 댓글 1 신고

 

질경이 밟기  ​/최정


내가 오가는 흙길은 질경이가 점령했지
아무리 밟혀도 끄떡없지
밟히기 위해 태어났나 봐

질겨서 질경이가 된 게 틀림없어

참 신기하지?
질경이는 밟혀야 살아

밟히는 게 더 속이 편한 걸까
남을 밟는 건 영혼 한 귀퉁이를 도려내는 일

입시학원 팀장 시절 인기 없던 동료 강사를
내 손으로 해고하고 난 후부터였을까

된통 병이 났지
견딜 만하다고 믿었던 삶이 무너졌어
내가 나를 속이고 살았나 봐

질경이를 밟고 걸을 때마다
왜 밟히고 사는지 미안하고 딱해지곤 해

근데 알고 있니?
질경이는 원래 이름이 길경이래
길 위에 사는 풀이라 길경이

잡아먹을 듯 키재기하며 경쟁하는 풀들을 피해
팍팍한 길바닥 위로 나온 거지
길 위는 블루오션이거든

도시를 피해 들어온 작은 골짜기가 내겐 블루오션이야
돌밭을 일궈야 먹고사는 흙바닥 생이 내겐 숨구멍이지

어찌나 잎을 질기게 단련시켰는지
밟혀서 찢긴 구멍 한두 개쯤은 별것도 아니지

밟혀야 사는 생도 있어
아무리 밟혀도 죽지 않는 생이 있어


최정 : 충북 충주 출생.

첫 시집 『내 피는 불손하다』(2008)로 문단에 나옴.

시집 『산골 연가』(2015).『푸른 돌밭』(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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