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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복] - 복제인간을 통해 '인간은 왜 사는가?'라는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다.
13  쭈니 2021.04.19 14:43:02
조회 50 댓글 0 신고

감독 : 이용주

주연 : 공유, 박보검, 조우진

TVING으로 볼 것인가? 극장에서 볼 것인가?

작년부터 개봉을 기다렸던 [서복]이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극장 개봉에 성공했다. [서복]의 선택은 OTT 서비스인 TVING과 극장 동시 개봉. 이미 극장 개봉 대신 OTT 공개를 선택하는 영화들이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상황에서 [서복]의 선택은 극장 개봉을 기다리는 나에겐 그나마 다행스러운 선택이었다. 최소한 편안하게 집에서 OTT 서비스로 볼 것인가, 아니면 큰 극장 화면으로 볼 것인가, 선택할 수가 있으니까. 물론 나의 선택은 당연히 극장이었다. 코로나19 때문에 극장에 관객이 없어서 아이러니하게도 극장이 더욱 안전하게 느껴지는 상황이니 굳이 극장에 가는 것을 거부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물론 고민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TVING의 베이직 이용권을 월 7,900원에 구입을 하면 [서복]은 물론 TVING에 등록되어 있는 수많은 영화들도 함께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Seezn, 넷플릭스를 이용하고 있는 나에게 TVING 이용권 구입은 중복 지출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게다가 메가박스에서 [서복]을 보면 오리지널 티켓을 주고, 오리지널 티켓 두 장을 받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아내와의 극장 데이트를 할 수밖에 없으니 메가박스 조조 영화 요금 기준 2인 14,000원의 값어치는 충분히 있는 셈이다. (카카오뱅크 프렌즈 체크카드로 4천 원이나 할인받았다.)

토요일 아침, 늦잠 자고 싶다고 투덜거리는 아내를 깨워 극장 나들이를 나섰다. 아내와의 단둘만의 극장 데이트라니, 이게 도대체 얼마 만인지. 이렇게 좋은 기분으로 [서복]을 관람했기 때문일까? 나는 [서복]이 충분히 재미있었다. 물론 영화 후반부 설정이 너무 과하긴 했지만... 하지만 토요일 늦잠을 방해받았기 때문일까? 아내는 [서복]이 영 만족스럽지는 않았다고 하더라. 뭐 언제나 그랬다. 아내는 나보다 영화에서 재미를 느끼는 관점이 항상 까다로웠다. 어쩌면 그래서 아내가 나와의 극장 데이트를 싫어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내와 함께 영화를 본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좋은데...

소재가 신선하지는 않다.

[서복]의 내용을 간단하게 설명한다면 인류 최초의 복제 인간 '서복'((박보검)과 '서복'을 지켜야 하는 전직 특수 요원 민기현(공유)의 우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개봉 전부터 공유, 박보검의 브로맨스 영화라며 홍보를 했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정적 중요한 키워드는 브로맨스가 아닌 복제 인간이다. 사실 복제인간이라는 소재는 이제 더 이상 신선하지 않다. 수많은 할리우드 영화들이 복제인간이라는 소제를 통해 영화적 재미를 추구했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는 2005년 작은 마이클 베이 감독의 [아일랜드]이다. 인간을 위해 신체 부위를 제공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복제인간을 통해 [아일랜드]는 당시 화제가 되고 있었던 생명체 복제에 대한 윤리적 문제를 오락 영화적인 화법으로 관객에게 제기했다.

복제인간이 가지고 있는 윤리적인 문제를 가장 철학적으로 제기한 영화는 SF 영화의 전설 [블레이드 러너]이다. 이 영화는 인간보다 더 인간 같은 복제인간의 반란이라는 기본적인 세계관 안에서 복제인간을 추적하게 페기 처분하는 임무를 가진 '블레이드 러너' 데커드(해리슨 포드)의 활약에 초점을 맞추었다. 얼핏 보기엔 복제인간과 인간의 대결이라는 단순한 플롯의 영화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인간과 복제인간의 흐릿한 경계를 통해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관객에게 던진 영화이다.

[서복]은 정확하게 [아일랜드]와 [블레이드 러너]의 중간 지점에 서있다. 복제 인간 '서복'에게 인간을 초월한 초능력(염력)을 부여함으로써 오락 영화적인 재미를 부여하고, '서복'의 마지막 선택을 통해 '인간은 왜 사는가?'라는 철학적인 질문을 던진다. 비록 [서복]이 관객에게 던진 질문이 신선하지는 않지만, 과학의 발전으로 복제 인간이 더 이상 SF적 상상의 존재가 아닌, 실제로 가능해질 수 있는 요즘, [서복]의 주제는 몇 번이고 되씹어봐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불로불사의 존재가 아닌, 불로불사의 도구

영화의 제목이자 주인공의 이름인 '서복'은 영화에서도 언급되었다시피 불로초를 구하러 동쪽으로 떠난 진시황의 신하 '서복'에서 따왔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서복'이 불로초를 찾아 나선 곳으로 몇 가지 장소가 제시되는데, 그중 한 곳이 제주도의 서귀포'라고 한다. 서귀포라는 이름부터가 '서복'이 다녀간 곳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한다. 여하튼 진시황이 그토록 원했던 불로불사는 진시황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이 오랫동안 꿈꾸어 왔던 일이기도 하다. 실제로 의학 기술의 발달로 인간의 수명은 100세 시대를 바라볼 정도로 늘어났지만 불로불사의 꿈은 아직도 상상 속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복제인간 '서복'은 바로 그러한 인간의 불로불사를 이뤄줄 수 있는 불로초와도 같은 존재이다. 하지만 그 자신이 불로불사의 몸인 것은 아니다. 실제로 '서복'은 인간보다 성장 속도가 2배나 빠르기 때문에 매일 성장 억제제를 맞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인간보다 더 빨리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참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영화 초반 서인 그룹의 대표이사이자 연구원인 신학선(박병은)은 '서복'을 기현에게 죽지 않는 존재라고 소개한다. 하지만 그것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서복'은 죽지 않는 존재가 아니다. 단지 인간들이 죽지 않는 존재가 되도록 만들어주는 도구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학선이 '서복'을 죽지 않는 존재라고 말한 것은 '서복'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닌, '서복'으로 인하여 자신이 얻게 될 능력을 암시하는 말일뿐이다. (불로초가 영원히 죽지 않는 식물이 아니듯...)

'서복' 또한 사람들이 자신에게 원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어쩌면 그가 매일 성장 억제제 주사를 맞는 고통 속에서도 서인 연구소에서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와도 같은 존재인 임세은(장영남) 때문이다. 교통사고로 죽은 아들이 보고 싶어서 복제인간 프로젝트에 뛰어든 세은에게 '서복'은 아들이었고, '서복' 또한 세은은 어머니였다. '서복'은 실험실의 돼지와 같은 자신이 처할 운명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그 운명을 순순히 따른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기 때문에...

살고 싶어 사는가? 죽음이 두려워 사는가?

'서복'이 서인 연구소로 돌아가겠다고 결심하는 이유는 단지 그것뿐이다. 그는 가족이 없다. 세은 밖에. 결국 세은이 있는 서인 연구소는 그에겐 집이다. 설사 그곳의 사람들이 그를 인간이 실험체 취급을 할지라도... 그리고 또 한 가지 그가 서인 연구소로 돌아가려 한 이유는 기현 때문이다. 뇌종양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기현은 '서복'을 보호하면 병을 낫게 해주겠다는 정보국 안부장(조우진)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처음 '서복'은 기현 또한 자신을 도구로만 생각하는 사람이라 생각해서 차갑게 대한다. 하지만 정보국 요원의 총 앞에서 몸을 던져 '서복'을 지키려 하는 그를 보며 생각이 달라진다. 그가 자신을 구하려 했던 것처럼, 자신도 기현을 구해주고 싶다고...

미국은 '서복'을 치명적인 위협이라 여기고 제거하려 한다. 그들이 내세운 논리는 이렇다. 인간에게 죽음이라는 공포가 사라진다면, 인간은 더 이상 가치 있는 삶이 아닌 쾌락만을 즐기는 삶을 추구할 것이다. 그러한 상황이 지속된다면 인류 사회는 통제가 불가능할 것이며 결국엔 멸망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솔직히 공감한다. 영원한 삶은 어쩌면 축복이 아닌 저주일지도 모른다. 죽음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긴 영생 동안 권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더욱 자극적인 쾌락을 추구하고 결국 인간성을 잃은 채 점점 쾌락의 짐승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서복'은 기현에게 묻는다. 왜 살고 싶어 하느냐고... 사실 동료를 배신했던 과거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기현에게 삶은 지옥과도 같았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무의식적으로 살고 싶어 한다. 왜냐하면 죽음이 두렵기 때문이다. 죽음이 두렵기 때문에 너무나도 괴롭지만 계속 살려고 발버둥 친다. 뒤늦게 기현은 그러한 사실을 깨닫는다. 자신이 살기 위해 그토록 애썼던 이유가 단지 죽음이 두려웠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사랑하는 사람도, 미래에 대한 희망도 없는 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겠다고 발버둥 치는 이유는 고작 그것뿐이었다.

마지막 '서복'의 폭주는 너무 과했다.

인간의 삶은 영원하지 않다. 그렇기에 인간은 자신의 유전자 일부를 후손에 남기고, 그렇게 후손을 통해 영원한 삶을 추구한다. 대부분의 부모가 자식을 위해 헌신하는 이유는 자식을 위해 영원한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렇게 나의 일부분인 자식을 위한 삶을 살아간다. '서복'이 자신도 누군가를 위해 살고 싶었다고 이야기하는 부분은 바로 그러한 인간의 본능을 뜻한다. 복제인간인 탓에 후손을 남길 수 없었던 '서복'은 자신도 다른 인간과 똑같이 누군가를 위한 삶을 살고 싶었던 것이다. 그것이 비록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것일지라도... 세상 대부분의 부모들이 자식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살고 있듯이, 자신도 희생을 통해 '난 실험체가 아닌 인간이다.'라고 주장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러한 '서복'의 희망은 사라진다. 그리고 '서복'의 분노가 시작된다. 이미 영화에서 '서복'에게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염력이 있다는 사실을 관객에게 선보였다. 그러한 설정을 통해 영화는 후반부 '서복'의 분노로 인한 폭주를 터트린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너무 과하긴 했다. 이건 뭐 [엑스맨]의 매그니토급의 능력인데, 안부장이 끌고 온 부대 하나를 묵사발 내는 장면은 분명 스펙터클하긴 했지만, 너무 과한 장면 때문에 이 장면 직전까지 느껴졌던 감정선들이 와르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아내가 [서복]에 실망감을 드러낸 이유 또한 그러한 과한 마무리 때문이었을 것이다.

분명 마무리가 과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서복]이 꽤 재미있었다. 인간과 다른 탄생 과정을 가졌지만, 인간과 똑같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존재는 과연 인간일까? 아닐까? 우리에게 영원한 삶이 주어진다면 그것은 축복일까? 저주일까? 진정한 인간다움이란 무엇일까? 너무나 순수한 얼굴로 여러 가지 질문을 관객에게 던지는 '서복'을 보며 나도 오랜만에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이용주 감독의 오락 영화로서의 욕심을 조금만 버리고 후반부만 너무 과하지 않게 진행했다면 더욱 좋았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남지만, 그래도 영화가 끝난 후 '서복'의 슬픈 눈빛이 오랫동안 여운으로 남았던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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