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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도둑은 내가 아니고 사람이라예!"
이지데이 이지데이 2008.01.17 00:2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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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술레
너는 순
아무리 내가 너를 붙잡아도
너는 자꾸만 수평선 아래로 꼭꼭 숨는구나

어쩌지 못하는 슬픈 운명!

너와 나의 끈질긴 악연은
누가 만든 것이냐
내가 이리도 아프고 지독한 만남을 바라는 것이냐
너가 이리도 눈물나게 슬픈 사랑을 바라는 것이냐

먼 훗날
너가 내가 되고
내가 너가 되는 그날이 오면
너가 던진 그물에 내 기꺼이 걸려주마

- 이소리, '어부와 대게' 모두

나는 초겨울부터 늦봄에 세상 구경을 한다.

나는 동녘바다 진흙 또는 모래바닥에 하얀 배를 깔고 살아가는 대게다. 내 몸통은 둥근 삼각형으로 주황색 등에는 작은 가시와 납작한 사마귀 모양의 돌기가 흩어져 있다. 대나무처럼 쭉쭉 뻗은 내 팔은 2개이며 다리는 모두 8개다. 그중 내 두 번째 다리는 한반도 동녘바다에서 사는 게 가운데 가장 길다.

나는 대부분 암컷이 수컷보다 큰 뭍의 동물과는 달리 수컷이 더 크며 부부가 되어도 함께 살지 않는다. 나는 따뜻한 바다보다 차가운 바다를 좋아한다. 나는 주로 바다 속 200~300m에 살면서 물고기의 시체나 작은 물고기, 게, 새우, 오징어, 문어, 갯지렁이 등을 잡아먹으며 살아간다.

어떤 때 배가 몹시 고프면 나는 나의 동무들을 가차 없이 잡아먹기도 하고, 더 급하면 나의 다리를 잘라먹기도 한다. 나는 캄캄한 밤에 바다 속으로 쏘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다 2월이 되면 나는 마음에 쏘옥 드는 또 다른 나를 만나 뜨거운 사랑을 나눈다. 그리고 1~2시간 뒤면 알을 낳아 나의 핏줄을 이어간다.

나는 겨울로 접어드는 11월에서부터 이듬해 늦은 봄인 5월 말까지 세상 구경을 한다. 이 때가 되면 어부들이 옆으로 기다란 사각형의 그물을 내가 자주 다니는 바다 속 길목에 수직으로 펼쳐 나를 잡기 때문이다. 나는 어부들이 던진 통발이나 그물코에 한번 걸려들면 꼼짝없이 바다 밖으로 딸려 올라간다.

영덕에서 잡히면 '영덕대게', 포항에서 잡히면 '포항대게'?

나는 주로 러시아의 캄차카반도와 알래스카주, 그린란드, 일본, 한반도 등지에 둥지를 틀고 살아간다. 하지만 아무리 먹고 살기 힘들어도 한반도 동녘바다 아래로는 더 이상 내려가지 않는다. 그곳에서 출렁이는 바닷물은 찜질방처럼 너무 뜨거워 내가 편안하게 살아갈 만한 곳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나를 바다에서 살아가는 다른 물고기들처럼 양식을 하려고 온갖 수다를 다 떨며 실험을 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갇힌 곳에서 사람들이 때때로 던져주는 먹이를 날름날름 받아먹으며 살아가지 못한다. 나는 타고 난 천성이 드넓은 바다를 마음껏 헤엄치며 다녀야 내 목숨을 제대로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대게다. 크기가 커서 대게가 아니라 긴 다리가 대나무처럼 쭉쭉 뻗어 있다고 해서 사람들이 붙인 이름이다. 근데, 사람들은 정말 웃긴다. 내가 사람들에게 잡히는 곳에 따라 내 이름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내가 러시아나 북한에서 잡히면 사람들은 러시아산 대게, 북한산 대게라 부르고, 영덕에서 잡히면 영덕대게, 울진에서 잡히면 울진대게라 부른다.

얼마 전 포항과 울산 정자 앞바다로 놀러갔다가 그만 어부의 그물에 걸린 내 동무들은 금세 이름이 포항대게, 정자대게로 바뀌었다. 그리고 서로 자기가 잡은 대게들이 가장 정통적이고 맛있는 대게라고 마구 홍보를 하고 있다. 마치 그곳에서 잡히는 대게는 흑인종, 백인종처럼 피부색이 다르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홍게는 주황색, 대게는 갈색빛 도는 붉은 색

나는 소줏빛 바다가 그리운 대게다. 사람들은 나만 보면 소주를 떠올리며 나를 먹기 위해 환장을 한다. 어떤 사람은 껍질이 붉은 홍게를 들고 나라고 여기며 맛나게 먹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나는 갈색빛이 감도는 붉은 색을 띠고 있다. 물론 나를 찌면 홍게처럼 등껍질이 주황색으로 변한다.

맛 또한 다르다. 나는 솥에 찌면 내 속살이 짜지 않고 달착지근하면서도 부드럽다. 내 등딱지에 고여 있는 게장도 구수한 게 참 맛이 좋다. 근데, 홍게는 속살이 몹시 짜다. 그리고 등딱지에 들어 있는 게장도 아주 짜고 적게 들어 있다. 값 또한 다르다. 그러니까 나랑 비슷하게 생긴 게 값이 몹시 싸다면 홍게라고 여기면 된다.

나는 나만 보면 침을 삼키며 마구 달려드는 사람들이 정말 우습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다. 나를 들고 내 사지를 쭉쭉 찢어 '후루룩~ 쪽쪽! 후루룩~ 쪽쪽!' 이리 빨고 저리 빠는 것도 모자라 내 등딱지에 고여 있는 게장에 뜨거운 밥과 참기름까지 올려 쓰윽 쓱 비벼 게걸스럽게 먹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면 어떤 때는 소름이 끼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괜찮다. 어차피 죽으면 썩어 문드러질 몸이 아니던가. 그런 내 몸이 사람들의 입맛은 물론 건강까지 지켜준다니, 이것이야말로 가장 큰 몸보시가 아니겠는가. 게다가 조물주가 나와 사람의 관계를 그렇게 맺도록 미리 운명지어 놓았지 아니한가. 다만, 걱정되는 것은 사람들이 나의 씨까지 말리지나 않을까 그게 훨씬 더 두렵다.

대게는 떡 찌는 솥에 김으로 쪄야 제 맛이 난다

"요새, 겨울철에도 식중독이 많이 생긴다던데, 대게 이거는 거리낌 없이 막 먹어도 괜찮습니까?"
"대게 먹고 체한 사람 없니더. 몰라. 요새 수입산 대게나 홍게를 영덕대게이니 울진대게이니 하면서 포장마차에서도 파니까, 간혹 체하는 사람이 생길 수도 안 있겠니껴? 대게는 쉬이 변하기 때문에 싱싱한 것을 골라 빨리 쪄서 먹어야 되니더."

"어떤 게 좋은 대게입니까?"
"다리나 배 쪽을 눌러보았을 때 단단한 게 속살이 꽉 차 있는 것이니더. 대게는 크기보다 속살이 얼마나 많이 차 있는가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니더."

지난해 12월 끝자락. 나는 울진 앞바다에서 동무들과 팔씨름을 하며 놀다가 그만 어부의 그물에 걸려 경매를 통해 곧바로 마산의 어시장으로 팔려왔다. 마산 어시장 곳곳의 수족관에는 미리 팔려온 내 동무들이 게거품을 뽀르르 피어 올리며 사람들에게 몸보시를 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날, 나는 어시장 들머리에 있는 한 식당으로 다시 팔려갔다. 그 식당에는 몇몇의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하며 웃음꽃을 피우고 있었다. 이윽고 울진이 고향이라는 주인은 나를 미지근한 물에 담가 순식간에 내 목숨을 앗아갔다. 나를 살아 있는 그대로 찌게 되면 몸을 마구 비틀어 몸통 속의 맛있는 게장이 마구 쏟아지기 때문이다.

내가 게거품 몇 번 뽀르르 피어 올리다 그대로 죽자 주인은 떡 찌는 솥에 물을 붓고 내 하얀 배를 떡시루 위쪽으로 향하게 얹었다. 그리고 뚜껑을 꼭 닫더니 20분 정도 뚜껑 한 번 열지 않고 김으로 포옥 쪘다. 이는 나를 찌는 도중에 액체 상태로 변한 속살과 몸통 속의 게장이 흘러내려 다리살을 검게 만들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쫄깃쫄깃 부드럽게 혀 끝에 감기는 달착지근한 속살 맛 '으뜸'

그렇게 2~3분이 흘렀을까, 내 속살이 천천히 굳기 시작하자 주인은 나를 꺼내 손님들이 밑반찬 몇 가지를 놓고 소주를 홀짝거리고 있는 식탁 위에 보기 좋게 올렸다. 그러자 눈이 번쩍 띈 손님들이 저마다 나의 다리를 죽죽 찢더니, 내 다리 끝에 있는 뾰쪽한 발톱으로 순식간에 다리살을 쏘옥 꺼내 입으로 가져갔다.

"요즈음 참 좋은 세상이야. 예전에는 대게 이거 한 번 맛보려면 일부러 시간을 내서 영덕이나 울진까지 가야 했다 아이가."
"그래, 역시 이 맛이야. 속살이 달착지근하면서도 쫄깃쫄깃한 게 둘이 먹다가 하나 죽어도 모를 정도로 맛이 기가 막히구먼."
"대게 이기 필수아미노산이 많이 들어 있고, 저지방 고단백 식품이어서 소화가 아주 잘 되는 것은 물론 어린이나 노약자들한테 몸보신용으로 그만이라 안 카더나."

그날 손님들은 내가 성질이 차가운 음식이라 했다. 그런 까닭에 해열이나 숙취, 가슴답답증 등 체질적으로 열이 많은 사람에게 아주 좋은 음식이라 했다. 그리고 얼굴색이 붉은 사람이나 입술이 얇고 작으면서 얼굴 아랫부분이 좁고 뾰쪽하게 생긴 사람, 체격이 마른 사람, 산후 어혈을 풀어주는 보약이라고 입방아를 찧었다.

나, 대게는 그렇게 죽어 사람들의 살과 피가 되었다. 나는 비록 운 나쁘게 어부의 그물에 걸려 사람들이 즐기는 음식이 되었지만 사람들에 의해 다시 사람의 몸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이만하면 나 대게의 일생이 헛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내가 다시 대게로 태어나지 않고 사람으로 태어나는 길은 오로지 이 길뿐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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