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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국에 밥 말아먹으면 주인이 혼낼까?"
이지데이 이지데이 2008.01.09 00:2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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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똥똥하고 비늘이 거의 없는 복어. 누군가에게 공격을 받으면 금세 공기를 잔뜩 들이마셔 허연 배를 풍선처럼 탱탱하게 부풀어 올리는 복어. 잘못 먹으면 순식간에 사람의 목숨을 빼앗아가기도 하는 복어. <본초강목>을 쓴 이시진이 당나라 절세미인 서시(西施)의 젖가슴을 닮았다 해서 '서시유(西施乳)'라고도 불리는 복어.

복어에 얽힌 이야기도 참 많다. 1992년 14대 대선 때 대선의 향방을 가늠할 정도로 크게 터진 부산 초원복국집 사건도 있고, 복어를 먹고 곧바로 잠이 들면 그대로 죽는다는 민간의 이야기도 있다. 또한 술도가에서는 술독에 찌든 술때를 쉬이 제거하기 위해 복껍질을 이용한다는 그런 이야기도 나돈다.

사실, 초원복국집 사건은 복어와는 별 관련없는 정치적인 이야기다. 물론 복어가 몸에 좋다고 해서 모였겠지만. 하지만 민간의 이야기는 복어가 가지고 있는 '테트로톡신'이라는 독성과 이어진 이야기이며, 술도가 이야기는 그만큼 복어가 숙취해소에 뛰어나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함일 것이다.

기왕 복어의 독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으니, 이에 얽힌 정말 우스꽝스럽고도 머리끝이 쭈뼛 서는 사건 하나를 소개한다. 이 이야기는 90년대 중반쯤 울산지역에서 실제 있었던 일이다.

울산의 모 지방일간지 기자들이 오랜만에 간부들과 함께 복전문점에 가서 복회를 시켜먹고 있었다. 그 복전문점은 울산에서 복 조리를 잘하기로 이름난 집이었다. 근데, 복회를 맛있게 잘 먹던 간부 하나가 갑자기 머리가 어지럽고 손발에 마비가 온다며 자리에 슬며시 드러누워 버렸다.

이상하게 여긴 기자들이 복회에 이상이 있는 것 같다며 급히 조리사를 불렀다. 그때 불려온 조리사가 '그럴 리가 없다'며 자신이 조리한 복회를 몇 점 찍어먹었다. 그리고 '보시다시피 제가 먹어도 아무런 이상이 없지 않습니까'라며 '저 분은 몸이 안 좋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고 했다.

그렇게 끝났으면 오죽 좋았으랴. 그 복회를 먹고 의기양양하게 주방으로 돌아가던 그 조리사가 불과 몇 발자국 걷기도 전에 그만 식당 바닥에 털퍼덕 쓰러지고 말았다. 물론 둘 다 급히 병원으로 실려가 가까스로 목숨을 건지긴 했지만 참으로 웃지 못할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이러한 갖가지 우스꽝스럽고도 위험천만한 사연을 간직하고 있는 바다 물고기가 바로 복어다. 사실이 이러한데도 왜 사람들은 복어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일까. 이는 복어로 만든 여러 가지 음식이 자신의 목숨을 걸고 먹을 정도로 그 맛이 뛰어나고 숙취해소, 성인병 예방 등에 뛰어난 효능을 보이기 때문일 게다.

몸에도 좋고 탈도 많은 복어. 어찌 보면 양면성을 가진 물고기가 바로 복어다. 복어는 검복, 까치복, 밀복, 까칠복, 졸복, 가시복, 흰복 등 생김새나 모양, 크기에 따라 그 종류도 많다. 또한 복어의 종류와 계절에 따라 그 독성이 다 다르고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중 사람들이 술을 많이 마신 다음날 흔히 해장국으로 즐겨먹는 것이 검복 혹은 까치복이다. 등에 붉은 점이 있고 배가 흰 검복은 다른 복어에 비해 독성이 적고 덩치도 제법 큰 편이다. 까치복은 검복보다 작으며 등에 무늬가 있는 게 특징이다. 하지만 까치복은 강한 독성이 있으므로 몹시 조심해야 한다.

"예로부터 까치복은 3월부터는 먹지 말라고 했다며?"
"요즈음에는 요리법이 워낙 잘 발달했기 때문에 걱정 안 하셔도 될 겁니다. 복어가 몸에 좋다고 집에서 함부로 해먹다가는 큰 일 날 수도 있겠지요."
"그나저나 이 집 복지리는 정말 독특하게 먹네. 마산 사람들은 복지리에 고춧가루로 만든 양념을 뜸뿍 넣고 밥을 말아 먹는데. 그리고 대구에 가니까 콩나물을 건져서 양념장에 비벼먹은 뒤 밥을 말아 먹던데."
"지역에 따라 먹는 방법이 조금씩 다를 수도 있겠지요."

얼마전, 진주에 사는 조경국(35) 선생이 소개한 남강 주변에 있는 '복나라'는 진주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이름 난 복전문점이다. 일반 가정집을 식당으로 고쳐 만든 이 집에서는 복회, 복껍질, 복찜, 복 매운탕, 복국 등 복어로 만들 수 있는 음식은 모두 갖추고 있다.

그날 우리가 시켜 먹은 음식은 술을 많이 마신 다음날 먹으면 그야말로 썬한('시원한'의 경상도 말) 국물맛이 끝내준다는 복국이었다. 상큼한 달롱개(달래의 경상도 말) 무침 등 밑반찬 예닐곱 가지와 함께 뚝배기에 담겨 나온 복국. 언뜻 보기에는 이 집의 복국도 여느 복전문점의 복국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허연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국물 위에는 여느 집처럼 듬성듬성 썬 미나리가 동동 떠 있고, 희멀건 국물 속에는 듬뿍 넣은 콩나물과 듬성듬성 토막 낸 복어 고기 몇 토막이 들어 있었다. 나는 여는 때처럼 식초 몇 방울을 떨어뜨린 뒤 뜨거운 국물을 후후 불어가며 몇 숟갈 떠먹었다. 그리고 뚝배기에 밥을 말려고 했다.

근데, 희한하게도 다른 집과는 달리 고추장과 김가루, 참기름, 깨소금 등을 넣은 큰 대접이 하나 따라 나왔다. 이게 뭘까? 이곳에 밥을 비벼먹으라는 건가. 아니면 예전에 대구의 어느 복전문점에서 먹었던 것처럼 이 대접에 뚝배기의 콩나물을 먼저 건져내 비벼먹은 뒤 밥을 말아먹으라는 건가.

"국물 맛이 어때요?"
"아주 시원하고 좋은데. 한 달 전에 먹은 술까지 다 씻겨내려가는 것 같구먼."
"이 집 복국은 먼저 대접에 밥 한 공기를 넣고 콩나물을 건져내 비빈 뒤 국물과 함께 떠먹는 그 맛이 끝내준답니다."
"그냥 밥을 복국에 말아 먹으면 주인이 혼낼까?"
"그런 게 어디 있습니까. 그냥 드시고 싶은 대로 드세요."

그랬다. 조 선생의 말마따나 대접에 콩나물과 함께 밥을 비빈 뒤 한 입 입에 넣고 복지리 국물을 떠먹는 그 맛은 정말 색달랐다. 아니, 그렇게 먹는 것이 그냥 말아먹는 것보다 오히려 더 국물이 시원하고 새로운 진맛이 혀끝을 농락했다. 틈틈이 복지리에 들어 있는 복어 고기를 후추간장에 찍어먹는 그 맛 또한 쫄깃쫄깃한 게 참 맛이 좋았다.

게다가 복국의 국물을 떠먹을 때마다 이마와 목에 줄줄 흐르는 땀방울을 훔쳐가며 찍어먹는 향긋한 달롱개 무침도 별미였다. 오죽 맛이 있었으면 10분도 채 안 돼 커다란 대접에 콩나물과 함께 쓱쓱 비빈 매콤한 비빔밥과 그 시원한 복국 국물을 마치 물에 헹군 듯이 깨끗하게 먹어 치웠을까.

"막힌 속이 확 뚫리는 것 같습니까?"
"마산 복국과 대구 복국을 한꺼번에 먹은 것 같구먼."
"이 집이 겉보기는 초라해도 진주에서 알아주는 집이랍니다. 매일 새벽 삼천포에서 가져오는 싱싱한 복어를 재료로 복조리 전문가가 음식을 만드는 데다 다른 집에 비해 값도 아주 싸지요."

보약이니 뭐니 몸에 좋다는 것도 많지만 제대로 챙겨먹는 음식만한 보약이 또 어디 있겠는가. 다같이 시원한 복국 한 그릇을 먹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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