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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스파이] - 우린 겨우 두 사람이지만, 세상은 이렇게 변하는 거야.
13  쭈니 2021.09.16 13:33:46
조회 31 댓글 0 신고

감독 : 도미닉 쿡

주연 : 베네딕트 컴버배치, 매랍 니니트쩨

제3차 세계대전에 가장 가까웠던 순간

1962년 쿠바 미사일 사태는 제3차 세계대전과 가장 가까웠던 전 인류의 위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1959년 쿠바에 카스트로 정권이 출현하며 미국과 쿠바의 갈등은 심화되었다. 케네디 미국 대통령은 반혁명 세력을 지원하며 카스트로를 제거하기 위해 공작을 펼쳤지만 결국 실패했고, 1962년 쿠바에 무역을 전면 금지시키는 초강수를 두게 된다. 그러자 카스트로는 소련에 손을 내밀었고, 소련의 지도자 흐루시초프는 쿠바를 핵 무장시켜 미국과의 핵 균형을 이루고자 했다. 이러한 첩보를 입수한 미국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미국에서 불과 90마일(약 145km) 떨어진 곳에 소련제 핵미사일을 설치한다는 것은 미국 안보에 큰 위협으로 여겼고, 1962년 10월 24일 미국은 소련을 향해 14일 이내에 미사일 발사 장치를 철거하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다. 세계 초강대국인 미국과 소련의 강대강 대결. 전 세계는 제3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감쌌다. 10월 28일 다행히 흐루시초프가 미사일 철수를 선언하면서 인류는 핵 전쟁의 문턱에서 위기를 막아낼 수가 있었다.

만약에 미국이 쿠바 미사일 배치를 몰랐다면...

만약 미국이 쿠바 미사일 배치를 몰랐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소련은 비밀리에 쿠바에 미사일을 배치했을 것이고,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미국과 소련의 갈등은 결코 돌이킬 수 없었을 것이다. 이미 터키에 미사일을 배치한 미국은 소련을 향해, 쿠바에 미사일 배치에 성공한 소련은 미국을 향해 각각 핵미사일을 발사했을지도 모르며, SF 영화의 한 장면처럼 인류는 핵으로 인한 멸망을 맞이했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 미국은 쿠바 미사일 배치 첩보를 입수했고, 그 덕분에 쿠바의 미사일 배치는 취소되었으며, 미국 또한 소련과의 비밀 합의에 의해 터키의 미사일을 철수하였다. 그리고 1963년 7월 미국과 소련의 핫라인이 개설되고, 두 나라는 핵실험 정지 조약이 체결되었다. 그렇게 인류는 핵으로 인한 멸망 위기에서 가까스로 벗어났다.

쿠바 미사일 사태에서 인류를 구해낸 영웅

[더 스파이]는 쿠바 미사일 사태에서 인류를 구해낸 영웅에 대한 이야기이다. 소련의 전쟁 영웅이자 고위 간부인 올레그 펜콥스키(메랍 니니트쩨)는 흐루시초프의 광기를 목격한다. 그는 이대로 둔다면 미국과 소련에 의한 핵 전쟁이 일어날 것을 우려하여 조국을 배신하고 미국의 스파이가 되기로 결심한다. 이에 미국 CIA 요원 에밀리 도나반(레이첼 브로스나한)은 영국 MI6에 도움을 요청하고, MI6는 소련의 의심을 받지 않을 민간인 사업가 그레빌 윈(베네딕트 컴버배치)를 설득하여 소련으로 보낸다. 사업을 핑계로 소련에 도착한 그레빌 윈은 올레그 펜콥스키와 접촉하여 소련의 군사 기밀을 빼돌린다. 하지만 소련에서도 그레빌 윈과 올레그 펜콥스키의 관계를 의심하기 시작하며 두 사람은 최악의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평범한 사업가 그레빌 윈은 왜?

자! 입장 바꿔 생각해 보자. 만약 국정원에서 당신에게 접근하여 대한민국의 안보를 위해 스파이가 되어 북한에서 임무를 수행하라고 한다면 과연 당신은 'OK'하겠는가? 나는 확실하게 'NO'라고 대답할 것이다. 내가 그렇게 용감한 인물은 아니기도 하지만, 그렇게 막중한 임무를 짊어졌다가 실패할 경우의 죄책감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레빌 윈은 놀랍게도 CIA와 MI6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스파이로 활동하다가 걸리면 재판 없이 총살을 당할 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용기를 냈던 이유는 가족 때문이다. 에밀리 도나반은 그레빌 윈에게 만약 소련이 영국으로 핵미사일을 쏜다면 10분도 채 되지 않아 당신의 가족은 죽음을 당할 것이라 경고한다. 만약 이번 임무를 도와준다면 핵 전쟁이 일어나도 정부의 시설로 가족을 대피시켜 주겠다는 협박 아닌 협박을 한다. 그런데 이게 먹힌다. 그만큼 그 당시는 언제 핵 전쟁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았던 시절이었던 것이다.

올레그 펜콥스키를 배신할 수 없었던 그레빌 윈의 우정

결국은 가족이다. 올레그 펜콥스키가 조국을 배신한 이유도 핵 전쟁만큼은 피해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이다. 핵 전쟁이 일어난다면 자신의 가족도 무사하지 못할 테니까. 그런 면에서 올레그 펜콥스키와 그레빌 윈은 닮았다. 사랑하는 아내와 어린 자식이 핵 전쟁으로 인한 재난을 피할 수 있도록 두 사람은 목숨을 내걸고 위험천만한 모험을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했던가. 소련 KGB도 바보는 아니다. 소련의 기밀이 미국과 영국에 흘러 들어간다는 사실을 눈치챈 KGB는 사업차 모스크바를 자주 오고 가는 그레빌 윈을 의심하고, 그레빌 윈과 친분을 쌓은 올레그 펜콥스키를 감시하여 결국 올레그 펜콥스키가 미국의 첩자라는 사실을 밝혀낸다. CIA와 MI6는 올레그 펜콥스키와 그의 가족을 미국으로 망명시켜 주겠다고 약속을 했지만 모스크바에서 감시를 받고 있는 그에게 탈출 계획을 전달하는 것이 불가능해진 상황. 그때 위험을 무릅쓰고 그레빌 윈은 다시 모스크바로 향한다. 이번엔 올레그 펜콥스키를 위해...

실화를 바탕으로 했기에 더욱 가슴 아프다.

만약 [더 스파이]가 실화를 바탕으로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만약 그렇다면 영화의 후반은 그레빌 윈과 올레그 펜콥스키가 KGB의 추적을 아슬아슬하게 따돌리고 소련을 탈출하여 영국 땅을 밟으며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것으로 마무리되었을 것이다. 아마도 테일러 핵포드 감독의 1985년작 [백야]의 감동이 재현되지 않을까? (어린 시절 TV에서 [백야]를 보며 감동의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더 스파이]는 실화이다. 그래서 [백야]와 같은 극적인 탈출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KGB에 붙잡힌 그레빌 윈과 올레그 펜콥스키. 희망은 없다. 그러나 올레그 펜콥스키를 구할 방법은 없지만 그레빌 윈이 무사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방법은 있다. 그가 끝까지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 채 올레그 펜콥스키가 시키는 대로 물건을 전달했을 뿐이라고 주장하는 것. 그렇게 그레빌 윈은 1년 6개월 만에 무사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올레그 펜콥스키는 처형당한 후 묘비 없는 무덤에 매장됐고, 부인과 자녀들은 모스크바에서 조용히 살도록 허락받았다고 한다.

용기 있는 두 사람이 세상을 바꾸었다.

영화 후반부, 소련의 감옥에서 올레그 펜콥스키와 재회한 그레빌 윈의 장면은 압권이다.

올레그 : 그레빌, 난 세상을 안전한 곳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그런데 실패했어요. 이 모든 게... 조국과 동포를 배신한 게 헛된 짓이었죠.

그레빌 : 알렉스, 이제 핵 전쟁이 터지진 않을 거래요. 흐루시초프가 미사일을 철수했대요. 당신 덕분에, 당신 덕분에, 당신이 해냈어요. 해냈어요, 알렉스. 당신이 해냈어요, 해낸 거예요! 당신 덕이에요. 당신이 해냈어요!

KGB에 끌려 나가며 당신이 해냈다고 외치는 그레빌 윈의 목소리는 나에게 큰 울림을 줬다. 그래, 그들이 해냈다. 결과적으로 올레그 펜콥스키 덕분에 미국은 쿠바 미사일 기지의 위치를 알아냈고, 쿠바 미사일 기지가 완성되기 전에 소련을 압박할 수 있었으며,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과 소련은 핵실험을 멈추었다. 결국 두 사람의 용기가 세상을 바꾼 것이다.

실화에서 오는 깊은 울림이 느껴진다.

앞서 언급했듯이 [더 스파이]가 실화를 바탕으로 하지 않았다면 영화적 재미는 훨씬 커졌을 것이다. 첩보 영화의 스릴과 쾌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영화 후반부의 스릴과 쾌감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레빌 윈이 비행기 이륙 직전에 KGB에 끌려가고, 올레그 펜콥스키도 집에서 가족이 보는 앞에서 체포되는 되는 장면에서는 허무하기까지 했다. 영화에서 보면 극적인 탈출도 잘 하던데... 이렇게 첩보 영화의 스릴과 쾌감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지만, 대신 큰 울림을 안겼다. 두 사람의 용기가 제3차 세계대전, 그것도 핵 전쟁을 막을 수 있었다는 놀랄만한 사실이 나를 뭉클하게 만들었다. 그래, 세상은 이렇게 평범하지만 용기 있는 사람들에 의해 변해가는 것이다. 우리가 할 일은 그들의 용기가 결코 헛되지 않도록 그들을 기억하고, 그들이 바꾼 세상을 지키는 것이 아닐까. [더 스파이]를 보고 나니 그들의 용기가 너무나도 고맙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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