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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한 색다른 시선을 담은 두 편의 한국 영화... [아무도 없는 곳], [빛과 철]
13  쭈니 2021.06.22 14:3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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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쩍 더워진 요즘, 날씨가 더워지면 내 몸도 축 늘어진다. 몸이 축 늘어지다 보니 주말이 되었어도 소파에 누워 좀처럼 몸을 일으키기가 싫어진다. 기왕 소파와 한 몸이 되었으니 영화나 보자는 심산으로 지난 주말, 두 편의 한국 영화를 골랐다. 아이유가 나온다는 말에 주저 없이 선택한 [아무도 없는 곳]과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의 영화 [빛과 철]. 그런데 이 두 영화, 무더워 때문에 축 처진 내 상태만큼이나 분위기가 무거운 영화였다. 특히 죽음과 그러한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사람에 대한 시선이 색달랐는데... 과연 이 두 영화가 이야기한 죽음과 그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사람의 이야기는 어떤 것일까? (스포가 사정없이 투척됨)


[아무도 없는 곳] - 과거의 상처로부터 도망친 한 남자의 쓸쓸한 며칠 간의 기록, 혹은 한 남자의 죽음에 대한 심오한 비유

감독 : 김종관

주연 : 연우진, 이지은(아이유), 윤혜리, 김상호, 이주영

7년 만에 서울로 돌아온 소설사 창석(연우진)은 미영(이지은), 출판사 편집자 유진(윤혜리), 우연히 마주친 사진작가 성하(김상호), 바텐더 주은(이주영)을 만나게 된다.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 그들의 마음속 깊숙이 간직한 이야기를 듣게 된 창석은 영국에 있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다시 시작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두 사람 사이에 놓인 상처는 아직 치유되지 않았고, 창석은 다시 시작할 수 없음을 알게 되는데...

사실 [아무도 없는 곳]을 보기 전에 나는 이 영화가 일반적인 상업 영화는 아닐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김종관은 [최악의 하루], [더 테이블],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페르소나] 중 네 번째 단편인 [밤을 걷다]를 연출한 감독이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리메이크한 최근 연출작 [조제]가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그나마 유일하게 대중성을 확보한 영화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김종관 감독의 영화는 상업 영화와 재미가 거리가 먼 영화들이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나는 [아무도 없는 곳]도 그런 영화일 것이라 생각했고, 내 예상은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하지만 김종관 감독의 영화는 취향에 따라 재미가 없을지언정 어렵지는 않았다. 배우 지망생인 은희(한예리)가 하루에 세 명의 남자와 만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최악의 하루], 어느 카페의 테이블에 머물다간 네 개의 인연에 관한 영화 [더 테이블], 그리고 가수 아이유의 톱스타로서의 외로움을 담담하게 그려낸 [밤을 걷다]까지... 그의 영화에는 담담하지만 명확한 스토리 라인이 존재했다. 하지만 [아무도 없는 곳]은 관객에 따라 영화를 각기 다르게 해석할 수 있을 정도로 명확하지 않다. 일단 나는 이 영화가 창석의 죽음에 대한 심오한 비유라 생각한다.

창석이 카페에서 처음 만난 미영(이지은)은 치매에 걸린 그의 어머니(손숙)이다. 미영은 일찍 죽은 남편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러면서 창석에게 자신의 남편을 닮았다며 담배를 끊으라고 조언한다. 그 후 창석은 유진을 만나며 자연스럽게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기 시작한다. 이후에도 창석이 담배를 피우는 장면은 여러 번 등장한다. 창석의 소설 출판을 위해 만난 유진은 자신의 낙태 경험을 털어놓는다. 그리고 영화 후반 창석의 아이가 사고로 영국에서 죽었고, 그로 인한 충격에 창석은 도망치듯이 서울로 돌아왔음이 드러난다.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한 창속의 소설에서 주인공이 죽음을 맞이했다는 언급도 의미심장하다.

세 번째로 만난 성하는 아내가 시한부임을 고백한다. 그리고 아내가 죽으면 자신도 죽을 것이라며 청산가리를 품 안에 넣고 다닌다. 결국 성하는 창석과의 대화 도중 아내가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고 창석은 성하의 청산가리를 몰래 챙긴다. 영화 후반 영국에 남은 창석의 아내는 아이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으며, 테이블에 놓인 청산가리가 클로즈업된다. 마지막 만남인 주은은 자신이 큰 교통사고를 당했으며 그로 인하여 기억을 잃었다고 고백한다. 그녀의 가슴엔 커다란 수술 흉터가 있다. 그녀는 창석에게 이야기를 사겠다고 제안하고 창석은 술 한 잔에 자신의 이야기를 판다. 창석의 이야기를 들은 주은은 마치 추도사와 같은 시를 쓴다. 기다린다는 말 한마디로 기다리는 사람이 된 창석에 대한 시를...

나는 창석이 만난 사람들이 창석의 죽음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유진은 창석의 자식의 죽음, 성하는 창석의 아내의 죽음, 그리고 미영과 주은은 창석의 죽음이다. 어쩌면 창석은 성하가 그러려고 했듯이 아내의 죽음 후 청산가리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지도 모르고, 미영이 경고대로 흡연으로 인한 폐암, 혹은 주은이 당했던 사고로 죽음을 맞이했을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건 창석의 죽음을 통해 그가 있었던 모든 곳은 '아무도 없는 곳'이 된다.

물론 이 모든 것은 내 억측일 수도 있다. 실제로 함께 [아무도 없는 곳]을 봤던 아내는 영화에 대한 내 해석에 너무 과하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어쩌면 창석은 실제로 미영, 유진, 성하, 주은과 만났고, 성하가 진짜로 자살할까 봐 청산가리를 가져온 것이며, 혼자 서울로 도망쳐서 과거의 상처를 혼자 달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이 모든 것의 시작은 자식의 죽음에서 비롯된 것이며, 이 모든 것은 자식의 죽음에 대한 상처에서 벗어나려는 창석의 가슴 아픈 몸부림이라는 것. 이렇게 [아무도 없는 곳]은 자식의 죽음에게서 도망친 한 남자의 쓸쓸한 며칠 간의 기록이고, 다르게 해석하면 상처를 극복하지 못한 한 남자의 죽음에 대한 기록이다. 무엇이 되었건 이 영화는 잔잔하게 가슴 아프다.


[빛과 철] - 자신이 원하는 진실만을 추구하는 사람들... 하지만 진실은 복잡한 음모론이 아닌 단순한 사실일 뿐이다.

감독 : 배종대

주연 : 김시은, 염혜란, 박지후

2년 만에 고향에 돌아온 희주(김시은)는 교통사고로 죽은 남편에 대한 아픈 기억을 묻고 새 출발을 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그녀가 일하기로 한 직장에 영남(염혜란)이 있음을 알게 되면서 과거의 상처가 되살아나고 만다. 영남의 남편은 희주의 남편이 낸 교통사고의 피해자로 그는 2년째 의식불명의 상태로 병원에 누워 있다. 영남을 의식적으로 피하는 희주. 그런데 영남의 딸 은영(박지후)이 희주에게 접근하고, 사실은 자기 아빠가 자살을 하려 했다는 충격적인 비밀을 털어놓는다. 은영의 고백으로 인하여 2년 전 교통사고의 피해자와 가해자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희주는 재조사를 요청하고, 이 사건이 더 많은 비밀이 숨겨 있음을 깨닫게 된다.

나홍진 감독의 [곡성]에서 연출부로 일하며 경력을 쌓은 배종대 감독은 장편 데뷔작으로 [빛과 철]을 선택했다. 그는 [곡성]에서 배웠던 것 그대로 [빛과 철]에 탁월한 긴장감을 불어 넣었다. 어찌 보면 [빛과 철]은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은 두 여자의 이야기처럼 보인다. 하지만 단순해 보이는 사고의 뒤에 뭔가 은밀한 비밀이 숨겨 있음이 드러나며 1시간 47분이라는 러닝타임 동안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한다.

자신의 남편이 가해자라 생각해서 2년 동안 트라우마에 사로잡혔던 희주는 피해자인 줄 알았던 영남의 남편이 사실 가해자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이상하다. 주변 사람 모두가 뭔가 숨기는 것 같다. 2년 전 희주를 대신하여 교통사고를 처리했던 희주의 오빠 형주(이주원), 그리고 희주와 영남이 일하는 공장의 관리 과장과 담당 형사까지. 도대체 그들이 숨기려 하는 것은 무엇일까?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는 항상 이런 식이다. 처음엔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거대한 음모가 드러난다. 그것이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의 묘미이다. 나는 [빛과 철]도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 그렇기에 2년 전 교통사고에 어떤 거대한 음모가 숨어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희주와 영남이 일하는 공장의 사장과 얽힌 무슨 추악한 음모 따위를 기대한 것이다. 하지만 그런 거 없다. 오히려 희주와 영남은 진실을 파헤칠수록 받아들이기 힘든, 아니 받아들이기 싫은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공장에서 산재 사고를 당한 영남의 남편은 제대로 몸을 가눌 수 없는 자신의 처지와 하청업체 직원이라며 사고를 모르는척한 회사의 만행에 자괴감을 느끼며 자살을 하려 했다. 영남이 그러한 사실을 몰랐을까? 단지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희주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혼 소송 중, 우울증에 걸린 남편. 희주의 남편 또한 자살을 하려 했다. 하지만 희주는 그러한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공장의 관리 과장과 희주의 오빠 또한 자살을 방조한 죄책감에 사건은 은폐시키려 노력한 것이다.

분명 희주와 영남이 원했던 진실은 그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희주는 자신의 남편이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라는 사실이 밝혀짐으로써 자신의 죄책감이 덜어지는 것을 원했고, 영남은 2년 전 처리된 그대로 자신의 남편이 피해자라는 사실이 유지되길 원했다. 이렇게 하나의 사고로 각자 원했던 것이 달랐기에 두 사람은 서로를 적대시하며 기싸움을 벌인다. 하지만 진실은 엉뚱한 곳에 있다. 희주의 남편도, 영남의 남편도 가해자가 아니었다. 도로에 심심치 않게 출몰하는 고라니가 범인이었던 것. 희주와 영남이 탄 차를 끔벅이며 쳐다보는 고라니를 클로즈업하며 영화는 끝을 맺는다.

허무하다고?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진실을 원하지만, 그들이 원하는 진실은 대부분 사실이 아닌, 자신이 원하는 그 무엇이다. 한강에서 실족사를 당한 예비 의대생의 아버지가 끊임없이 음모론을 제시하며 경찰이 발표한 진실을 외면하는 이유도 바로 그러한 이유이다. 자신이 원하는 진실이 아니기에...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단순하다. 왜 경찰이 거짓을 발표하겠는가? 왜 목격자가 거짓을 증언하겠는가? 대부분의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에서는 거짓 뒤에 추악한 음모가 자리 잡고 있지만, 현실은 영화가 아니다. 복잡한 음모론을 버리고 나면 진실은 의외로 단순하다. 단지 받아들이는 것이 힘들 뿐이다. [빛과 철]은 남편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히려는 희주를 통해 단순한 진실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렇게 이 영화의 결말이 너무 영화적이지 않았기에 오히려 내겐 더욱 인상 깊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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