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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특별한 녀석들의 사랑, 내 사랑은 포기를 모른다네... [그녀가 사라졌다], [쁘떼뜨], [너의 얼굴은]
13  쭈니 2021.06.16 17:21:55
조회 26 댓글 0 신고

평범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은 어떤 사랑을 할까? 지극히 평범한 평균치 인간인 나로서는 상상이 안된다. 하지만 영화의 상상력이라면 불가능은 없다. [그녀가 사라졌다]는 조현병에 걸린 한 남자의 현실과 환각을 오고 가는 사랑 이야기이고, [쁘떼뜨]는 냉전 시대를 배경으로 단역 배우에서 하루아침에 천재 감독이 된 한 남자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동독 최고의 대작 영화를 제작하는 이야기이며, [너의 얼굴은]은 보기만 해도 사람을 죽게 만드는 치명적인 얼굴을 가지고 태어난 소년의 사랑 이야기이다. 이 특별한 남자들의 사랑은 평범한 사람들과 어떻게 다를까? 영화가 가지고 있는 상상력을 들여다보자.


[그녀가 사라졌다] - 사랑을 찾아 대륙을 횡단하는 데본보다, 조현병에 걸린 동생에게 헌신적인 희생을 하는 닉에게 박수를...

감독 : 루크 이브

주연 : 브렌튼 스웨이츠, 릴리 설리반, 조엘 잭슨

환영과 환청에 시달리는 데본(브랜튼 스웨이츠). 다니던 직장에서 쫓겨나고, 얹혀살았던 형인 닉(조엘 잭슨)의 집에서도 반강제로 독립을 해야 할 처지에 빠진 그는 더 이상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지 않기 위해 자살을 결심한다. 하지만 그가 깨어난 곳은 루시(릴리 설리반)의 집 욕조 안. 옥상에서 떨어진 데본을 자신의 욕조로 옮겨 놓았다는 루시와 데본은 꿈같은 데이트를 즐긴다. 하지만 그 다음날 루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닉은 모든 것이 데본의 환영이라고 말하지만 데본은 인정할 수 없다. 그에겐 그녀가 남긴 쪽지가 있는 것을... 그 쪽지에는 시드니에서 만나자는 메시지가 적혀 있었고, 루시를 찾기 위해 데본은 시드니로 대륙 횡단을 감행한다. 하지만 시드니에서조차 루시를 찾을 수가 없었고, 급기야 루시가 남긴 쪽지마저 그가 만들어낸 환영이었음이 밝혀진다. 정말 루시는 데본이 만들어낸 환영일까? 그녀의 얼굴, 그녀의 향기를 똑똑히 기억하는 데본도 결국 루시가 자신이 만들어낸 환영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조현병... 쉽게 말하면 정신분열증이다. 대부분의 영화에서 조현병 환자는 위험천만한 인물로 그려진다. 현실에서도 그렇다. 뉴스에서 조현병 환자가 저지른 경악할만한 사건들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하지만 모든 조현병 환자가 그런 것은 아니다. [그녀가 사라졌다]는 조현병에 걸린 데본을 통해 그가 겪는 혼란을 그리면서도 그도 결국 우리와 똑같이 사랑을 갈구하는 평범한 사람임을 드러낸다.

물론 말이 그렇지 데본은 결코 평범하지는 않다. 데본을 도와주는 슈퍼 히어로 미스터 로켓과 데본을 위협하는 빌런 미스 니들스에 대한 환영과 환청에 시달리는 데본은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들도 힘들게 한다. 특히 어렸을 적부터 데본을 부양했던 형, 닉의 고충은 영화를 보는 관객의 입장에서도 안쓰럽게 느껴질 정도이다. 자신의 결혼식에서 갑자기 자해를 시도하는 동생을 따뜻하게 거둬준 닉. 하지만 아내인 올리비아가 임신을 하며 더 이상 무슨 사고를 저지를지 알 수 없는 데본과 함께 사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결국 닉은 데본의 독립을 측면 지원하기로 했지만 데본이 루시를 찾겠다고 사라지면서 죄책감에 빠지게 된다.

그렇다. 비록 데본은 영화에서 나오는 미치광이 살인자처럼 위험인물은 아니다. 하지만 그의 존재는 가족들을 피 말리게 만드는 시한폭탄이었던 것이다. 영화 후반부 시드니에서 데본을 찾은 닉이 속마음을 털어놓으며 울부짖는 모습은 이 영화에서 가장 진솔함이 느껴지는 장면이다. 내가 닉이었다면 어쩌면 데본에게서 도망치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데본에 대한 닉의 헌신은 [그녀가 사라졌다]에서 가장 위대한 희생이었다.

닉이 데본에게 위대한 희생을 하는 동안 데본은 아무런 대책도 없이 루시를 찾겠다며 대륙을 횡단한다. 그의 모험은 영화이기 때문에 가능한 행운으로 가득하다. 돈을 훔쳐 달아나고, 달리는 열차에서 뛰어내렸어도 멀쩡하고, 여러 사람들의 차를 얻어 타며 무사히 시드니에 도착한다. 그리고 시드니에서 같은 조현병 환자인 소울의 도움을 받아 시드니 시내 곳곳에 루시를 그린 전단지를 붙이고, TV에 출연하기까지 한다. 실제로 대책 없는 조현병 환자가 수천 km에 달하는 대륙을 아무것도 없이 횡단한다면 데본처럼 무사히 성공할 수 있었을까? 그럴 리가 없다. 이렇게 대책 없는 데본의 행동 때문에 루시를 찾아 대륙을 횡단한 그의 행동은 그다지 감동적이지는 않다.

이제 초점은 루시의 존재 여부이다. 영화 내내 루시 또한 데본이 만들어낸 환영이라 말을 하지만, 데본의 환영이 미스터 로켓과 미스 니들스에 국한되어 있음을 감안한다면 데본과 루시의 관계에 또 다른 사연이 있음을 짐작하게 된다. 그리고 드디어 루시가 데본 앞에 나타는 장면... 이 장면에서 나는 감동을 받아야 했지만 솔직히 그러지는 못했다. 오히려 루시의 등장으로 데본에 대한 닉의 힘겨운 부양이 끝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래서 데본과 루시는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까? 제발 그러기를... 그래야만 닉도 한시름 놓고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을 테니까.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이 영화의 주인공은 데본도 루시도 아닌, 조현병 걸린 동생을 부양하느라 고생하는 불쌍한 닉이다.)


[쁘떼뜨] - 분단된 독일의 베를린 장벽도 막을 수 없었던 그의 직진 사랑

감독 : 마틴 슈라이어

주연 : 에밀리아 슐레, 데니스 모옌

이제 막 군에서 제대한 에밀(데니스 모옌)은 형, 알렉스(켄 듀큰)가 일하는 독일의 영화 촬영소를 찾는다. 알렉스는 에밀에게 영화 촬영소 내의 허드렛일과 단역배우 일자리를 알선하지만 에밀은 우연히 만난 프랑스 여배우 베아트리체( 엘렌느 살보 곤잘레스)의 대역 댄서인 밀루(에밀리아 슐레)에게 한눈에 반해서 그만 사고를 치고 만다. 비록 그로 인하여 영화 촬영소에서 쫓겨날 처지가 되지만 밀루와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두 사람은 다음날 남들 몰래 만나기로 약속한다. 하지만 다음날 동독의 국경이 폐쇄된다. 그로 인하여 서베를린의 호텔에 묵었던 밀루는 동베를린에 있는 영화 촬영소에 갈 수가 없었고, 그렇게 에밀과 밀루는 안타까운 이별을 맞이한다. 하지만 밀루를 포기할 마음이 없었던 에밀은 밀루를 동베를린으로 불러들이기 위해 놀라운 계획을 세우게 되는데...

영화의 제목인 '쁘떼뜨'는 프랑스어로 '아마도'라는 뜻이라고 한다. 밀루에게 데이트를 신청한 에밀, 밀루는 '쁘떼뜨'라는 대답만 남긴 채 사라진다. 그것은 긍정도 부정도 아닌 대답일 뿐이다. 그리고 국경이 폐쇄되며 두 사람은 강제적인 이별을 맞이한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이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할까? 만약 내가 에밀이라면 밀루를 만날 수 없는 현실을 인정하고 그녀에 대한 추억을 간직하기만 했을 것이다. 깊이 사랑하는 사이도 아니고, 그저 하루 동안 달콤한 썸을 탄 사이가 아니던가. 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에밀은 결코 밀루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녀를 다시 만나게 위해 인생을 건 모험을 벌인다.

에밀은 어떻게 하면 다시 밀루를 만날 수 있을까? 고민한다. 그리고 답을 얻어 낸다. 베아트리스를 캐스팅하여 영화를 만드는 것. 베아트리스가 영화 촬영을 위해 동베를린에 오게 된다면 그녀의 대역 댄서인 밀루도 동베를린에 오게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베아트리스가 거부할 수 없는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에밀은 칼 보르크만이라는 가상의 천재 감독으로 자신을 위장하고 베아트리스가 맡고 싶어 했던 클레오파트라에 대한 영화를 찍겠다며 엉터리 시나리오도 쓴다. 그런데 그의 이 계획은 때마침 서방 세계에 동독의 위대한 문화 예술을 홍보하고자 하는 공산 정권에 눈에 띄게 되고, 에밀은 갑자기 엄청난 국가의 지원을 받는 대작 감독이 된다.

단역 배우에서 단숨에 대작 감독으로 신분 상승을 이뤄낸 에밀. 그는 영화 촬영소의 뜨내기들을 모아 스텝진을 구성하고, 영화사의 방해공작은 기발한 재치로 위기를 모면한다. 하지만 에밀이 결코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가 있었으니 밀루에겐 이미 약혼자가 있었던 것. 약혼자와 함께 파리에서의 안락한 삶을 살고 있는 밀루에게 에밀은 차마 동독에서의 불안한 삶을 함께 하자는 말을 하지 못한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불안정한 무명의 댄서로 생활했던 밀루 역시 자신의 안락한 삶을 포기하고 에밀과의 삶을 선택할 수가 없다.

자, 여기에서 질문... 당신의 앞에 꿈을 포기해야 하지만 안락한 삶과 불안정하지만 꿈을 이룰 수 있는 삶이 놓여 있다면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만약 당신이 젊다면 꿈을 이룰 수 있을 삶을 선택할 확률이 높고, 당신이 나이가 있다면 안락한 삶을 선택할 확률이 높을 것이다. 밀루 역시 그러한 선택의 순간에 놓인다. 에밀과 밀루의 관계를 의심하며 밀루를 돋보이게 할 수 있는 클레오파트라의 댄스 장면의 삭제를 요구하는 약혼자. 그와는 달리 밀루의 꿈을 이뤄지기 위해 위험천만한 선택을 한 에밀. 동독의 불안정한 정세를 생각한다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밀루의 고민은 당연하다.

물론 모두가 예상했겠지만 밀루는 파리에서의 안락한 삶을 포기하고 에밀에게 달려간다. 그리고 그 순간 내 가슴에도 벅찬 감동이 밀려 올라왔다. 그래, 이런 것이 사랑이다. 머리가 시키는 이성적인 선택보다는 가슴이 시키는 감성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것. 밀루에 대한 에밀의 말도 안 되는 직진 사랑이 이뤄지는 장면을 보며 마음속으로 나는 박수를 보냈다. 평범한 나는 에밀이 사랑을 위해 했던 모험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기에... 이렇게 특별한 녀석의 사랑은 뭐가 달라도 다르긴 하더라.


[너의 얼굴은] - 얼굴이 무기인 그 녀석, 시한부의 그녀에게 꽂히다.

감독 : 켈렌 무어

주연 : 브랜든 플린, 줄리아 골다니 텔레스, 이기홍

맥스(브랜든 플린)는 태어날 때부터 남달랐다. 그의 부모를 제외하고는 맥스의 얼굴만 봐도 사람들이 죽어 버린 것. 이를 막기 위해 맥스는 평생 붕대와 선글라스로 철저하게 얼굴을 가리며 조심스럽게 생활하지만 자신으로 인하여 죽는 사람들에 대한 죄책감을 참을 수가 없다. 결국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며 자살을 결심한 날, 운명적으로 알렉스(줄리아 골다니 텔레스)와 만나게 된다.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흥분을 하면 심장에 무리가 가서 죽게 되는 희귀병을 앓고 있는 알렉스와 맥스는 환상의 짝꿍이 된다. 하지만 맥스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맥스에 대한 감정을 쌓아가던 알렉스는 결국 심장에 무리가 가게 되고, 맥수는 알렉스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해야만 하는 순간을 맞이한다.

솔직히 [너의 얼굴은]의 주인공이 [메이즈 러너]에서 인상 깊은 활약을 펼쳤던 한국계 배우인 이기홍인 줄 알았다. (Seezn에서 이기홍을 줄리아 골다니 텔레스와 함께 주연으로 소개했고, 영화의 섬네일도 이기홍이었다.) 그래서 [너의 이름은.]을 연상하게 만드는 비호감적인 제목에도 불구하고 [너의 얼굴은]을 보기로 결심한 것이다. 하지만 이기홍은 주인공인 맥스의 친구 댄이라는 비중 있는 조연에 불과했다. 순간 '속았다'라는 배신감이 들었지만 어쩌겠는가. 한번 보기 시작한 영화는 웬만하면 중간에 끊지 못하는 성격인 것을...

속았다고 생각하면서 영화를 봤기 때문일까? 솔직히 [너의 얼굴은]은 같은 날, 같은 주제로 연달아 본 [그녀가 사라졌다], [쁘떼뜨]와 비교해서도 영화적 재미가 가장 부족했다. (세 영화 중 [쁘떼뜨]가 가장 재미있었다.) 특히 치명적인 얼굴을 가진 맥수라는 독특한 캐릭터를 탄생시켜 놓고 평범하게 영화를 진행시켜 놓은 것이 이 영화의 패착이다. 이 정도 설정이라면 좀 더 특별한 스토리를 만들 수도 있었을 텐데...

[너의 얼굴은]은 전형적인 하이틴 로맨스 영화일 뿐이다. 물론 붕대로 얼굴을 칭칭 감은 남자 주인공이 독특하지만 딱 그것뿐이다. 여자 주인공인 알렉스의 매력도 부족하다. 희귀병을 앓고 있는 알렉스. 그녀와 맥스의 사랑은 청춘 로맨스 특유의 발랄함을 유지하다가 마지막에 가서는 감동을 자아내야 했지만, 감정이 고조되면 엔도르핀이 돌게 되면서 심장에 무리가 가는 알렉스를 위한 설정인 것처럼, 켈렌 무어 감독은 최대한 영화의 감정을 억누른다. 그러다 보니 로맨스 영화 특유의 가슴 설렘도, 감동도 부족하다.

영화 후반 맥스가 자신의 치명적인 얼굴로 할 수 있는 재능을 발견하는 부분에서는 헛웃음까지 지어진다. 고작 이런 결말을 위해 치명적인 얼굴을 지닌 맥스라는 독특한 캐릭터를 탄생시켰다는 말인가. 내 상상력도 빈약하지만 켈렌 무어 감독의 상상력도 빈약하긴 마찬가지이다. 특별한 녀석의 사랑도 빈약한 상상력과 만나면 이렇게 보잘 것이 없어지는구나.

이 영화에서 가장 짜증 났던 부분은 맥스의 집에 묵게 된 중국인 교환 학생 장면. 굉장히 무례하게 표현된 그녀의 캐릭터는 영화를 난데없이 썰렁한 코미디 영화로 만들어 버린다. 왜 그랬을까? 굳이 그따위 캐릭터가 필요했을까? 아니면 영화의 러닝타임을 90분에 맞추기 위해 억지로 등장시킨 캐릭터일 뿐일까? 내가 보기엔 영화의 빈약한 상상력을 감추기 위한 썰렁한 농담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래저래, 배신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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