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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폴 W. S. 앤더슨

주연 : 밀라 요보비치, 토니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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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연휴에는 극장에 안 가려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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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인하여 5인 이상의 모임이 금지된 올해의 설날. 사정이 이러하니 예전처럼 일가친척이 오랜만에 모여 옛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우는 시끌벅적한 명절은 기대하기 어렵다. 결혼 전에는 차례를 지낸 후 사촌 동생들을 이끌고 극장에서 영화를 보곤 했었고, 결혼 후에는 명절 전날 차례 준비를 마친 후 온 가족이 함께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이 내게 있어서 명절 최고의 기쁨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는 그러한 나의 기쁨마저 빼앗아 갔다. 이 시국에 무슨 극장이냐며 잔소리를 하는 아내와 방역수칙을 철저하게 지키는 바른생활 아들로 인하여 올해 설날 연휴에도 극장 나들이는 물 건너 갔다고 나는 일찌감치 체념을 해야 했다. 그리고 솔직히 예년처럼 명절 대목을 겨냥하여 개봉한 흥행 기대작도 별로 없었고...

그런데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일이 벌어졌다. 아들이 "[몬스터 헌터] 안 봐요?'라고 물은 것이다. 사실 폴 W. S. 앤더슨 감독과 밀라 요보비치 주연의 영화라면 [레지던트 이블] 수준 이상을 기대하기 어렵기에 [몬스터 헌터]는 극장에서 보기엔 살짝 애매한 영화이긴 했다. 나는 차라리 [몬스터 헌터]보다는 [새해 전야]를 더 기대하고 있었지만, 아들이 [몬스터 헌터]를 선택했으니 굳이 거부할 필요는 없었다. 게다가 내가 극장에 가자고 하면 '이 시국에 무슨 극장이야.'라고 잔소리를 했을 것이 분명한 아내는 아들이 극장에 가자고 하니 무언의 승낙을 해주었다. 그래서 나는 아내와 아들의 마음이 변하기 전에 얼른 [몬스터 헌터] 예매를 완료했다.

토요일 아침 8시. 굳이 이 시간대에 예매를 한 이유는 극장에 이른 시간대에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극장 나들이는 성사되었지만 코로나19 시대에는 사람이 별로 없는 장소가 안전하기 때문에 영화를 보기 위해 늦잠을 포기해야 하는 수고는 너무나도 당연했다. 다행히도 내가 예상했던 대로 [몬스터 헌터]의 상영관에는 나와 아들을 포함해서 다섯 명의 관객이 전부였고, 그나마 두 명은 영화 중간에 나가 버렸다. 나는 [몬스터 헌터]에 대한 기대가 별로 없었기 때문인지 몰라도 꽤 재미있었다. 내용은 거의 없다시피하지만 영화의 상영 내내 등장하는 몬스터로 인한 볼거리는 꽤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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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 40분 동안 플레이 스테이션 게임을 한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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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전의 일이다. 오랜만에 집에 놀러 온 조카가 게임기를 TV와 연결하더니 몇 시간 동안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뭐 사실 조카들에게 살가운 삼촌은 아니었기에 조카가 게임을 하든 말든 관심이 없었지만 그래도 당시에는 게임기를 TV와 연결해서 TV 화면을 보며 게임을 한다는 것이 꽤 신기했기에 잠시 조카가 하는 게임을 구경했었다. 하지만 나의 구경은 몇 분을 지속하기 어려웠다. 너무 어지러웠기 때문이다. 1인칭 시점으로 적에게 총을 쏘는 게임이었는데, 몇 분 정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어지러워서 구토가 날 지경이었다. 지금도 나는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되는 게임은 하지 못한다.

[몬스터 헌터]를 보는 동안 나는 오래전 조카가 TV에 연결해서 하던 플레이 스테이션 게임이 생각났다. ([몬스터 헌터]는 2004년 3월에 출시된 동명의 플레이 스테이션 2 게임이 원작이다.) 다행스럽게도 [몬스터 헌터]는 1인칭으로 진행되는 영화는 아니지만 아르테미스(밀라 요보비치) 대위가 신세계에서 벌이는 모험담은 끊임없이 적을 찾아 총질을 해대던 조카가 하던 게임과 비슷했다. [몬스터 헌터]는 내용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게임도 그렇지 않던가. 기본적인 세계관과 캐릭터만 제시되면 게이머는 캐릭터를 선택하여 주어진 임무에 몰입한다. 게임을 기반으로 한 영화답게 [몬스터 헌터]가 딱 그러하다. 우리가 사는 세계와는 다른 몬스터가 사는 신세계가 있다는 기본적인 세계관이 제공되고, 임무 수행 중 신세계에 오게 된 아르테미스라는 캐릭터가 주어진다. 이제 남은 것은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임무뿐이다.

아르테미스와 함께 신세계에 넘어온 대원들은 영화 초반 모두 몬스터의 희생양이 된다. 그렇게 홀로 남은 아르테미스에게 신세계의 '몬스터 헌터'(토니 자)가 조력자로 등장하지만 오로지 관객(게이머)이 몰입(선택) 할 수 있는 캐릭터는 아르테미스뿐이다. 그렇기에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머치 내가 게임을 하듯이 움찔거리며 몸을 들썩여야 했다. 그것이 바로 게임을 원작으로 한 [몬스터 헌터]가 가지고 있는 최고의 재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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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창적이지는 않지만 충분히 위협적인 몬스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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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이 이러하니 [몬스터 헌터]가 가자고 있는 가장 큰 재미는 바로 위협적인 몬스터이다. 영화에서 가장 먼저 관객에게 선을 보이는 것은 디아블로스이다. 영화의 포스터에서 밀라 요보비치의 뒤편에 위풍당당한 위용을 자랑하는 몬스터인데,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을 만큼 디아블로스는 상당히 위협적이다. 일단 평상시에는 모래 속에 숨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다가 진동이 느껴질 경우 빠른 속도로 대상에게 다가가 거대한 몸집을 드러낸다. 아르테미스의 대원들은 신세계에 도착하자마자 디아블로스에게 당하고 마는데, 총을 맞아도 끄덕 없을 정도로 인간의 무기로는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는다.

디아블로스를 피해 겨우 바위 산으로 피신한 아르테미스 일행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네르스큐라이다. 거대한 거미 몬스터라고 봐도 무방한 네르스큐라는 집단생활을 하며, 아르테미스와 그녀의 부하들을 독침으로 마비시켜 지하의 둥지로 끌고 간다. 특히 새끼 네르스큐라들이 사람의 몸을 뚫고 나오는 장면은 압권이다. 다행히 네르스큐라는 햇빛에 약해서 낮에는 공격을 하지 못하는데, 만약 그러한 약점조차 없었다면 오히려 디아블로스보다 더 최악의 몬스터였을 것이다.

나는 당연히 디아블로스가 몬스터 보스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몬스터 헌터]의 진짜 몬스터 보스는 따로 있다. 바로 거대한 화룡인 리오레우스이다. 원작 게임에서도 간판 몬스터라고 알려진 리오레우스는 신세계의 비밀이 숨겨져 있는 타워를 지키는 몬스터로 신세계뿐만 아니라 아르테미스가 천신만고 끝에 다시 구세계로 돌아온 후에도 아르테미스를 쫓아와 아르테미스를 구하러 온 군인들을 몰살시키기도 한다. [몬스터 헌터]는 2편을 예고하며 끝이 났는데, 아마도 2편에서는 리오레우스가 본격적으로 활약을 할 듯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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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비주얼의 몬스터는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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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몬스터 헌터]의 몬스터에게서 아쉬움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몬스터들은 오락 영화의 재미를 느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위협적이지만 새롭지는 않았다. 디아블로스의 경우는 론 언더우드 감독의 걸작 크리쳐물 [불가사리]를 떠올리게 했다. 1990년에 국내 개봉한 [불가사리]는 네바다주 사막 한가운데 있는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사막의 모래 속에 숨어 있다가 진동을 느끼면 공격하는 거대한 뱀 돌연변이 트레모어스의 공포를 그린 영화이다.([불가사리]의 원제는 'Tremors'이다.) 내가 고등학교 시절에 동시 상영관에서 본 영화인데 디아블로스와 트레모어스는 생김새가 서로 다르긴 하지만 사막에 숨어 있다가 진동을 느끼면 땅속에서 공격을 한다는 설정이 똑같다.

아마도 거미는 인간에게 가장 혐오감을 안겨주는 동물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렇기에 거미의 특성을 지닌 몬스터는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편인데 그 대표적인 것이 [반지의 제왕]에 등장한 거대한 고대 거미 실롭이다. 거미가 우리에게 혐오감을 안겨주는 이유는 사냥 방식 때문이다. 끈끈한 거미줄을 친 후 거미줄에 걸린 대상을 마비시켜 거미줄로 칭칭 감아 보관을 하며 체액을 뽑아먹는... [몬스터 헌터]의 네르스큐라는 거미줄을 쳐서 사냥을 하는 거미가 아닌 땅거미와 비슷하지만 거미의 혐오스러운 특성에 사람의 몸에 알을 낳는 섬뜩한 특성이 추가되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몬스터 헌터]에서 네르스큐라가 가장 무서웠다.

[몬스터 헌터]의 최종 몬스터인 리오레우스는 디아볼로스, 네르스큐라보다 더 흔한 화룡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호빗]의 스마우그가 떠올랐다. 입에서 품어져 나오는 지옥 불이 특히 그러했다. 이렇듯 [몬스터 헌터]에 등장하는 몬스터는 어디에선가 한 번 이상은 봤음직하다. 하지만 애초에 게임을 원작으로 했고, 게임에 등장하는 몬스터를 시각화한 것이라 [몬스터 헌터]에게도 선택의 여지는 없을 듯하다. 영화를 볼 때 그러한 한계점은 미리 인식하며 관람해야 할 것 같다. 그래야 덜 실망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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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어울렸던 두 캐릭터의 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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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헌터]에서 아르테미스는 꽤 전형적인 캐릭터이다. 하지만 그녀가 신세계에서 만나는 '몬스터 헌터'는 굉장히 새로웠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아르테미스와 '몬스터 헌터'가 서로 티격태격하면서도 결국엔 합을 맞추어 몬스터를 무찌르는 장면은 이 영화의 또 다른 재미이다. 특히 신세계의 '몬스터 헌터'로 등장하는 토니 자의 존재감은 어마어마하다. 이 영화를 보기 전에는 밀라 요보비치가 주를 이루고 토니 자는 그저 약간의 보조 역할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영화에서는 토니 자의 역할이 꽤 비중 있어서 과거 [옹박]을 재미있게 봤던 나로서는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영화 초반과 후반에 모습을 드러낸 신세계의 제독(론 펄먼)과 깜짝 디지털 캐릭터인 고양이 요리사의 등장은 2편을 기대하게 만든다. [몬스터 헌터]가 아르테미스를 중심으로 한 단조로운 이야기의 영화라면 2편에서는 타워에 숨겨진 신세계에 대한 비밀이 드러나고, 신세계의 각종 개성 만점의 캐릭터들이 등장할 예정이다. 쿠키 영상에서 잠시 모습을 드러낸 정체불명의 사나이의 정체도 2편에서는 밝혀지지 않을까? [몬스터 헌터]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게임을 하듯이 즐기는 영화라면 2편에서는 좀 더 신세계에 대한 세계관과 캐릭터가 확장되면서 영화다운 이야기가 완성될 것으로 기대된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몬스터 헌터]가 흥행에 성공해서 2편 제작이 확정되어야 하겠지만...)

나는 게임을 그다지 즐기는 편이 아니다. 조카가 플레이 스테이션 게임을 할 때도 어지러워서 1분 이상을 구경하지도 못했으니, 내가 직접 해볼 생각은 아예 하지도 못했었다. 하지만 [몬스터 헌터]를 보는 동안에는 무아지경에 빠져 게임을 하는 기분을 느꼈다. 만약 내가 아르테미스 캐릭터를 플레이했다면 신세계에 도착하자마자 게임 오버되었겠지만, 암튼 능수능란하게 몬스터를 무찌르며 임무를 하나씩 완수하는 듯한 쾌감을 느낄 수가 있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아들은 닌텐도 스위치의 다음 게임 타이틀로 <몬스터 헌터>가 어떻겠냐고 내게 슬쩍 묻는다. 기껏 해봐야 <모여봐요 동물의 숲>이나 할 줄 아는 내가 <몬스터 헌터>를 할 수 있을 리가 만무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니 게임도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내가 게임을 하는 동안 옆에서 "왜 그렇게 못해요?"라며 구박하는 아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