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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족... 대 만족... 넷플릭스의 최신 영화 세 편... [더 디그], [알로하! 오하나를 찾아서], [승리호]
13  쭈니 2021.02.09 10:56:58
조회 481 댓글 2 신고

지난 주말은 많이 우울했다. 토요일 오전, 아내가 갑자기 감기에 걸린 것 같다는 무서운 선언을 한 것이다. 요즘 시국에 감기라니... 혹시 코로나19? 혹시라도 아내의 증상이 코로나19라면 올해 고등학교 3학년에 진학하는 아들에게 절대로 옮기면 안 된다는 굳은 결의를 하며, 떨리는 마음으로 아내와 나는 아들에게서 격리에 들어갔다. 다행히 아내의 감기는 감기약 먹고 나았지만, 아들과 함께 즐거운 주말을 보내려는 나의 계획은 무산되었다. 아들은 없고, 아내는 감기로 비실거리고... 이 우울한 주말, 그나마 나에게 즐거움을 준 것은 넷플릭스에서 최근 새롭게 공개된 영화 세 편이다.


[더 디그] - 우리가 살면서 세상에 남기고 싶은 것들

감독 : 사이몬 스톤

주연 : 캐리 멀리건, 랄프 파인즈, 릴리 제임스

제2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감돌던 1939년. 부유한 미망인 이디스 프리티(캐리 멀리건)가 자신의 사유지에 있는 둔덕에 대한 조사를 의뢰한다. 고고학계에선 그녀의 둔덕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고, 그렇기에 베테랑이지만 학위가 없어 귄위를 인정받지 못하는 발굴가 바질 브라운(랄프 파인즈)이 파견된다. 이디스의 집에 머물면서 둔덕을 조사하던 바질, 그런데 둔덕을 파헤치니 그 안에 거대한 배가 나온 것이다. 둔덕에서 거대한 배가 출토되었다는 소식에 대영박물관 관장인 찰스 필립스가 부랴부랴 발굴 현장에 도착하면서 바질은 발굴 현장에서 점차 밀려난다.

이디스의 둔덕에서 출토된 배가 앵글로 색슨의 유물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전국적으로 큰 화제가 되고, 이디스는 유물을 대영박물관에 기증하기로 결심하면서 한 가지 조건을 내건다. 그것은 바로 최초 발견자가 바질이라는 사실을 명시하는 것.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고, 질병을 앓고 있던 이디스는 세상을 떠난다. 전쟁이 끝난 후 이디스와 바질의 열정으로 출토된 앵글로 색슨의 배 유물(서튼 후 유물)은 대영박물관에 전시되지만 발굴자 명단에서 바질의 이름은 빠지고 만다. 그가 영국 고고학계에 큰 기여를 했다는 것은 최근에 들어서 밝혀졌으며, 현재에는 대영박물관의 서튼 후 유물 전시에 이디스와 함께 바질의 이름이 나란히 적혀 있다고 한다.

내가 넷플릭스에서 [더 디그]를 관심 영화로 등록한 이유는 캐리 멀리건과 랄프 파인즈이라는 연기력이 검증된 배우가 주연을 맡았다는 사실과 더불어 고고학 유적 발굴이라는 흔치 않은 소재의 영화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영화를 지질학에 관심이 많은 아들이 흥미로워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들은 "지질학과 고고학은 엄연히 다른 거예요. 고고학은 기껏 해봐야 몇 천년에 불과한 인간의 역사를 연구하는 것이지만, 지질학은 몇 십억 년의 역사를 가진 지구를 연구하는 것이거든요."라며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내가 보기엔 비슷해 보이는데... 뭐 어찌 되었건 그로 인하여 [더 디그]는 결국 나 혼자 봤다. (아내가 옆에서 꾸벅꾸벅 졸면서 함께 봐주긴 했지만...)

그런데 막상 영화를 보고 나니 [더 디그]를 아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어졌다. 영화가 재미있기 때문은 아니다. 솔직히 [더 디그]는 굉장히 잔잔한 영화이다. 고고학에 대한 이디스와 바질의 열정이 이 영화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혹시라도 영화의 재미를 위해 억지스러운 설정, 예를 들어서 바질이 아내를 놔두고 이디스와 불륜의 사랑에 빠지는 것은 아닐지 조마조마했다. 하지만 다행히 그런 막장 드라마는 펼쳐지지 않았다. 물론 나중에 발굴단에 합류한 여성 고고학자 페기(릴리 제임스)와 군에 징집된 이디스의 사촌 동생 로리(자니 플린)의 사랑 이야기가 펼쳐지기는 하지만, 두 사람의 사랑도 막장이라기보다는 아련하게 가슴 아팠다.

[더 디그]가 너무 잔잔해서 지루하다는 평가는 어쩌면 당연하다. 하지만 이 영화엔 잔잔한 스토리 전개를 뛰어넘는 아름다움이 있다. 그것은 바로 고고학의 의미이다. 나는 고고학이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소통이라고 생각한다. 기껏 해봐야 100년도 채 살지 못하는 인간은 후세를 위해 무언가를 남기려 했다. 그래서 벽화를 그렸고, 나중에는 문자를 만들어 새겨 넣었다. 무덤에는 죽은 이들의 유물을 함께 묻음으로써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남겼다. 우리가 자식을 낳는 이유도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기 위한 본능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게 우리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남기며 존재해왔다.

[더 디그]는 바로 그러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소통에 대한 이야기이다. 서튼 후 유물 발굴에 참가한 사람들은 앵글로색슨 시대의 유물을 통해 과거를 소환한다. 그리고 서튼 후 유물 발굴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려 애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지만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속담도 있지 않은가. 자신의 이름을 서튼 후 유물의 최초 발견자로 기록에 남게끔 배려를 한 이디스에게 바질이 감동을 한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부인과의 사이에서 자식이 없는 바질은 이디스가 아니었다면 후세에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채 쓸쓸히 잊혔을 것이다.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이디스는 어린 아들을 남겼지만 자신의 죽음 이후 혼자 남겨질 아들 때문에 괴롭다. 자신의 일부를 후세에 남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남긴 것을 잘 보존하는 것 역시 중요하기 때문이다.

영화가 끝난 후 나는 여운에 사로잡혀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어야 했다. 이디스의 어린 아들이 죽어가는 엄마를 위해 마련한 우주로의 여행 장면은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웠고, 유물 발굴을 위한 이디스와 바질의 열정도 내 심장을 뜨겁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미래를 위해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다면 내 인생은 너무 허무한 것 아닐까? 다행히 나의 유전자 절반을 물려받은 아들이 있다. 그리고 나의 아들이 훌륭한 지질학자가 되어 지구의 유구한 역사를 밝혀내는데 조금이라도 기여를 한다면 내 인생 또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아들도 [더 디그]를 보며 나와 같은 인생의 깊은 의미를 깨달을 수 있지 않을까? 아무래도 [더 디그]는 아들과 함께 한 번 더 봐야겠다.


[알로하! 오하나를 찾아서] - 보물은 중요하지 않아. 이것이 바로 하와이식 인디아나 존스

감독 : 주드 웡

주연 : 케아 페아후, 알렉스 아이오노, 오웬 바카로, 린지 왓슨

뉴욕 브루클린에서 엄마 레일라니(켈리 후), 오빠 이오아네(알렉스 아이오노)와 살고 있는 필리(케아 페아후)는 보물찾기 마니아이다. 친구와 함께 GPS 보물찾기 대회에서 우승한 필리는 보물찾기 여름캠프 참가 자격을 갖게 되지만, 레일라니의 강요로 인하여 어쩔 수 없이 외할아버지 키모(브랜스컴 리치몬드)가 살고 있는 하와이 오하우섬에 가게 된다. 인터넷도 안되는 할아버지의 집에서 따분하기만 한 필리. 그런데 우연히 할아버지의 물건 중 스페인 해적 몽스의 일기를 발견하고, 일기가 스페인 해적의 보물이 숨겨진 곳을 기록한 것임을 알게 된다. 그녀에게 가짜 보물이 아닌 진짜 보물을 찾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생긴 것.

재정난으로 인하여 세금을 내지 못한 할아버지가 집을 빼앗길 위기에 처하자 필리는 하와이에서 사귄 친구 캐스퍼(오웬 바카로)와 함께 몽스의 보물을 찾기 위해 나선다. 그리고 뒤늦게 이오아네와 캐스퍼의 보호자인 하나(린지 왓슨)까지 끼어들면서 보물찾기 팀이 결성된다. 하지만 시작부터 난항이다. 사고로 동굴 안에 갇히게 되고, 어렵게 보물을 찾아내지만 해적이 보물을 숨긴 곳이 하필 신성한 무덤 카푸였던 것. 보물에 욕심을 낸 필리 일행은 밤의 수호자에게 쫓기게 된다. 밤의 수호자에게 포위된 절체절명의 위기. 하지만 전혀 기대하지 못한 그 순간 필리는 뜻밖에도 죽은 아버지를 만나게 되는데...

솔직히 고백하자면 처음부터 [알로하! 오하나를 찾아서]를 볼 생각은 아니었다. 감기약을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든 아내를 뒤로하고 새벽까지 잠이 오지 않아 넷플릭스에 접속한 내가 선택한 영화는 낯선 사람들과 의문의 지역에 갇혀 사냥감으로 전락한 사람들의 이야기인 [더 헌트]였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더 헌트]는 플레이되지 않았다. 넷플릭스 에러로 인하여 청소년 관람불가 콘텐츠가 나의 계정에서 금지가 된 상황. 결국 선택할 수 있는 영화는 전체 관람가 등급의 영화밖에 없었고, 때마침 눈에 띈 것이 어린이용 영화인 [알로하! 오하나를 찾아서]였다.

상황이 이러하니 내가 이 영화를 기대하지 않은 것도 당연했다. 아는 배우라고는 이제는 늙어버린 켈리 후 뿐이었다. 2002년 [스콜피온 킹]을 볼 당시 카산드라를 연기한 켈리 후는 정말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답고 섹시했지만 이 영화에서의 켈리 후는 남편의 죽음 후 혼자 두 아이를 키우는 삶에 지친 중년 여성일 뿐이다. 하지만 의외로 나는 영화가 만족스러웠다. 하긴 애초에 [구니스], [영 인디아나 존스], [피라미드의 공포]에 열광하는 나의 영화 취향을 감안한다면 하와이판 어린이 인디아나 존스인 [알로하! 오하나를 찾아서] 역시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임은 충분히 예측 가능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알로하! 오하나를 찾아서]는 아름다운 하와이 풍경에 먼저 눈이 사로잡힌다. 정말 저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살 수 있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하지만 인터넷에 익숙한 필리와 이오아네에게 오하우섬은 아무것도 할 것이 없는 지루한 곳일 뿐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흥밋거리를 찾아야 한다. 필리에게 있어서 그것은 해적의 보물 찾기이고, 이오아네에게 있어서 그것은 아름다운 하나와의 로맨스이다. 그렇게 새로운 흥밋거리를 찾은 그들은 자연스럽게 위험한 보물찾기 게임 속에 빠져든다.

물론 어린이용 영화답게 그들의 해적 보물 찾기에 손에 땀을 쥐게 할만한 큰 위험이 닥치지는 않는다. 나는 필리와 마찬가지로 해적 보물의 존재를 알고 있는 악당이 필리 일행을 위협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런 뻔한 전개도 없었다. 동굴에 갇힌 필리 일행은 탈출구를 찾아야 하고, 탈출구가 곧 해적의 보물이 숨겨진 곳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렇게 탈출구를 찾아, 보물을 찾아, 힘겹게 한걸음 한걸음 내디디며 필리 일행은 한층 성장한다. 그리고 모두들 예상하겠지만 필리 일행은 어마어마한 해적의 보물도 찾아낸다.

만약 이렇게 이야기가 끝났다면 [알로하! 오하나를 찾아서]는 그저 그런 어린이용 어드벤처 영화에 그쳤을 것이다. 하지만 보물도 찾고, 탈출구도 찾고, 만사 오케이라고 생각한 순간 뜻하지 않은 위협이 필리 일행을 덮친다. 바로 하와이의 전설인 밤의 수호자가 등장한 것이다. 어드벤처 영화가 판타지로 전환되는 순간이다. 조금 뜬금없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엔 또 전혀 예상하지 못한 필리의 죽은 아버지가 등장하며 훈훈한 가족 영화로 마무리한다. 마지막 후반부는 정말 예측불허의 전개이다. 하지만 그 덕분에 [알로하! 오하나를 찾아서]는 전혀 새로운 어린이 어드벤처 영화가 되었다. 보물보다 중요한 가족애라니... 하와이 정서가 동양적이라는 느꼈는데, 알고 보니 주드 웡 감독은 대만 출신 감독이더라. 암튼 [알로하! 오하나를 찾아서]는 아들이 약간만 더 어렸다면 함께 봤으면 참 좋았을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6년 전 아들과 함께 [피라미드의 공포]를 봤던 추억이 새록새록 피어났다.)


[승리호] - 진일보한 한국형 SF. 세계관만 조금 더 가다듬자.

감독 : 조성희

주연 : 송중기, 김태리, 진선규, 유해진, 리처드 아미티지

2092년. 지구는 환경오염으로 사막화가 되어 버리자 땅에 더 이상 희망이 없음을 깨달은 인류는 하늘로 눈길을 돌려 위성 궤도에 인류의 새로운 보금자리 UTS가 만든다. 하지만 UTS에서 살 수 있는 것은 5%의 최상위 인간들뿐. 남은 95%의 인간들은 버려진 지구에 남아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버둥거린다. 한편 지구 근처 우주에는 인간들이 버린 우주 쓰레기가 가득하고, 우주 쓰레기를 주워 돈을 버는 청소선이 등장한다. 장선장(김혜리)이 이끄는 '승리호'는 청소선이지만 월등한 성능을 발휘하여 다른 청소선이 수집한 돈이 되는 우주 쓰레기를 빼앗으며 살아간다. 그러나 이렇게 개처럼 돈을 벌어도 언제나 적자일 뿐. 이 쓰레기 인생을 벗어날 기미는 벗이지 않는다.

'승리호'의 선원은 과거 UTS 엘리트 전투원 출신인 조종사 태호(송중기), 갱단 두복이었지만 지금은 '승리호'의 기관사인 타이거 박(진선규), 그리고 전투용 로봇이었지만 지금은 인간 피부 이식만이 지상 목표인 업동이(유해진)이다. 돈이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하는 '승리호'의 선원들에게 뜻밖의 기회가 찾아온다. 대량 살상 무기로 알려진 인간형 로봇 도로시를 발견한 것. 도로시를 넘기는 조건으로 테러 집단에 거액의 돈을 받기로 한 '승리호'의 선원들. 그런데 도로시 거래 현장에 UTS의 전투원들이 잠입하며 위험에 빠지고 만다. UTS와 테러집단에 동시에 쫓기게 된 '승리호' 선원들은 살기 위해 도로시에 대한 비밀을 캐내다가 UTS의 회장인 제임스 셜리반(리처드 아미티지)에 숨겨진 비밀을 알게 된다. 이제 '승리호' 선원들은 이제 돈이 아닌 정의를 위해 목숨을 건 모험을 하기 시작한다.

[승리호]의 알려진 제작비는 무려 240억이다. 240억의 제작비로 수익을 내려면 극장에서 최소 58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해야 한다. 코로나19 이전이라면 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한국형 SF 블록버스터라는 화제성만 이용한다면 개봉 1, 2주 만에 500만 명 관객 동원은 식은 죽 먹기이니까. 물론 그 이상은 영화의 만듦새가 좋아 입소문이 나야 하지만... 하지만 코로나19 이후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코로나19가 휩쓴 2020년 최고 흥행작은 [남산의 부장들]로 동원 관객 수는 475만 명에 불과하다. 그것도 코로나19가 국내에 대유행을 하기 전인 1월에 개봉해서 얻은 결과이다. 이는 다시 말해 [승리호]가 극장에 개봉한다면 손익분기점을 넘길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는 것을 뜻한다. 결국 [승리호]가 극장이 아닌 넷플릭스를 선택한 것은 탁월했다. 이 영화를 극장의 큰 화면으로 보지 못한 관객 입장에서는 아쉽겠지만...

넷플릭스에 [승리호]가 공개된 이후 이 영화에 대한 호평과 혹평이 이어졌다. 당연하다. 1억 달러의 제작비가 우습게 들어가는 할리우드 SF 블록버스터에 익숙한 관객의 입장에서 이제 고작 걸음마 수준인 한국형 SF가 만족스러울 리가 없다. 그와는 달리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제작비와 비교해서 20% 정도밖에 되지 않는 제작비로 이 정도의 완성도를 만들어낸 [승리호]에 박수를 보내는 관객도 많다. 나는 후자에 속한다. 애초에 한국형 SF는 시도 자체가 박수받을만하다. 할리우드 SF와 게임 자체가 되지 않지만 그렇다고 시도조차 하지 않으면 한국형 SF 장르 자체가 아예 사라질 것이다. 나는 미숙하더라도 한국형 SF가 꾸준히 시도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관객의 응원이 필수적이라 생각한다. (같은 이유로 한국형 SF의 망작이라 평가받는 민병천 감독의 2003년작 [내츄럴 시티]조차도 나는 좋았다.)

[승리호]가 구축한 특수효과는 내 기대 이상이었다. 같은 수준의 일본, 중국의 SF와 비교해도 나는 [승리호]의 특수효과가 월등히 나았다고 생각한다. (국뽕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특히 영화 초반 '승리호'가 다른 청소선의 우주 쓰레기를 가로채는 장면과 영화 후반 '승리호'와 UTS 무인 전투기의 추격씬은 극장의 큰 화면에서 봤다면 더욱 좋았을 것 같다고 느껴질 정도로 스펙터클한 속도감이 돋보였다. '승리호'의 승무원이자 전투용 로봇인 업동이도 매끄러운 움직임을 선보였는데, 업동이의 목소리에 유해진의 목소리를 덧붙이더니, 영화의 마지막엔 김향기의 얼굴까지 덧붙여 재미를 더해준다. 조성희 감독의 재기 발랄함이 돋보이는 순간이다.

캐릭터도 매력적이다. 장선장과 태호를 비롯한 '승리호' 선원들의 캐릭터를 조성희 감독은 꽤 정성껏 구축해 낸다. [늑대소년], [탐정 홍길동 : 사라진 마을] 등을 통해 새로우면서도 매력적인 캐릭터를 창조해냈던 조성희 감독이 [승리호]에서도 그 장기를 마음껏 발휘한 것이다. 캐릭터가 매력적이다 보니 그들이 이끌어가는 이야기에도 흡입력이 생긴다. 특히 순이에 대한 태호의 사연이 밝혀지고 나서부터는 나도 모르게 태호를 응원하게 된다. 비록 죽었지만 시체라도 찾아 좋은 곳에 묻어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돈이 되는 일이라면 그 어떤 짓이라도 서슴지 않고 덤벼드는 태호가 이해가 되었다. 내가 태호라도 그렇게 했을 테니까.

하지만 특색 없는 세계관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제임스 설리반이 주장하는 것은 과거 나치가 주장했던 우생학과 비슷하다. 우생학은 우수하고 건전한 유전자를 가진 인간의 증가를 위해 열등한 유전자를 가진 인간을 수를 줄여야 한다는 학문으로 이를 기반으로 육체적, 정신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학살을 정당화한다. 과거 테러 집단에 의해 가족을 잃은 제임스 설리반 입장에서는 지구의 인간들은 폭력적인 열등한 존재들이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이 선택한 우수한 인간들만 골라 화성에 자신이 꿈꾸던 유토피아를 건설하려 한다. 이러한 광기는 꽤 많은 영화들에서 소재로 이용되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킹스맨 : 시크릿 에이전트]에서 발렌타인(사무엘 L. 잭슨)의 음모이다. 제임스 설리반의 음모가 너무 뻔했고, 나노봇을 만능키로 이용하는 영화의 해피엔딩도 억지스러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리호]는 2시간 16분이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꽤 훌륭한 SF 오락 영화였다. 이 정도면 나의 응원을 받을 충분한 자격이 있는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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