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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신정 연휴에 본 묵직한 메시지를 담은 영화들... [이미테이션 게임], [세인트 주디], [프록시마 프로젝트]
13  쭈니 2021.01.06 17:55:57
조회 248 댓글 0 신고

2021년 새해가 활짝 열렸다. 비록 지난 2020년은 코로나19 때문에 우울한 한 해였지만, 2021년에는 코로나19의 백신과 치료제가 나오면서 희망찬 한 해가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2021년 새해를 맞이하여 극장에서 [원더우먼 1984]를 관람하는 것으로 가뿐히 시작했던 나는 연휴 기간 동안 세 편의 영화를 더 봤다. 최초로 컴퓨터를 개발한 앨런 튜링의 이야기를 그린 [이미테이션 게임], 캘리포니아 이민 전문 변호사 주디 우드의 실화를 다룬 [세인트 주디]는 코로나19로 인하여 폐쇄주의가 더욱 공고해진 지구촌에 보편적인 인류애를 강조한 영화이며, 여성 우주 비행사의 이야기를 담은 [프록시마 프로젝트]는 어머니라는 의무를 다하면서도 우주 비행사라는 꿈을 이룬 기혼 여성 우주 비행사를 통해 가슴 따뜻한 모성애를 보여준 영화이다. 비록 이 세 영화 모두 영화적 재미는 뛰어나지 않지만 희망찬 2021년에 꽤 잘 어울리는 영화였다.


[이미테이션 게임] -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아무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을 해내다.

감독 : 모튼 틸덤

주연 : 베네딕트 컴버배치, 키이라 나이틀리

나는 이미 [이미테이션 게임]을 지난 2015년 개봉 당시 극장에서 관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벽두부터 이 영화를 다시 보기로 결정한 것은 아들 때문이다. 과학에 관심이 많은 아들은 코로나19의 위협 속에서 최대한 외출을 삼가고 있는 중이지만 [테슬라]와 [마리 퀴리]가 개봉했을 땐 앞장서서 극장으로 향했었다. 이 두 영화의 공통점은 과학자의 삶을 소재로 했다는 것으로, 과학을 좋아하는 아들 입장에서는 놓칠 수 없었던 영화인 셈이다. 그리고 [이미테이션 게임]도 마찬가지이다. 비록 니콜라 테슬라나, 마리 퀴리처럼 널리 알려진 위인은 아니지만 [이미테이션 게임]의 주인공인 앨런 튜링은 지금 우리 사회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 되어 버린 컴퓨터의 원형을 완성한 인물이다. 넷플릭스에서 [이미테이션 게임]을 발견한 나는 아들이 좋아할 영화라고 생각해서 찜해 놓았고, 2021년의 두 번째 날 함께 영화를 볼 수가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절대 해독이 불가한 독일군의 암호 '에니그마'로 인하여 연합군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한다. 이에 영국군은 각계각층의 천재들을 불러 모아 암호 해독팀을 결성하는데 천재 수학자인 앨런 튜링(베네딕트 컴버배치)도 이 팀에 가담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독선적인 성격인 앨런은 '에그니마' 암호 해독에 여념이 없는 다른 팀원들과는 달리 '에그니마'를 자동적으로 해독할 수 있는 기계를 만드는데 시간을 소모한다. 그 누구도 앨런의 괴상한 기계가 성공할 것이라 믿지 않았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주요 임무에서 배제된 조안 클라크(키이라 나이틀리) 만은 앨런을 믿어주고, 이해했다. 그리고 드디어 앨런은 놀랍게도 기계를 완성해낸다. 그리고 그 기계에 크리스토퍼라는 이름을 붙여 준다.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부터이다. 만약 크리스토퍼를 이용해서 즉각적으로 독일군의 암호를 해독하면 독일군도 자신들의 암호가 뚫렸음을 파악하고 암호 체제를 바꿀 것이다. 그렇다면 그동안의 노력은 물거품이 된다. 결국 앨런과 그의 팀은 독일군에게 적당히 져주다가, 필요한 순간에는 만 이기는 전략을 취한다. 그 덕분에 연합군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를 거두지만, 독일군의 암호를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는척한 탓에 수많은 무고한 병사들이 죽음을 당했다. 이에 연합군은 이 사실을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졌으며 앨런과 크리스토퍼는 역사에서 지워진다. 하지만 앨런이 에니그마를 해독하기 위해 만든 크리스토퍼는 컴퓨터의 원형이 되어 인류 발전에 큰 족적을 남긴다.

진짜인지, 그냥 헛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애플 컴퓨터의 로고가 한 입 베어 문 사과인 이유는 앨런 튜링이 독이 든 사과를 먹고 자살을 했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그만큼 앨런 튜링이 컴퓨터의 역사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만약 지금 내게 컴퓨터가 없다면, 아마 당장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엄청난 업적을 세웠지만 그의 인생은 초라하기만 하다. 말년에는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화학적 거세를 당한 후 자살을 했을 정도이니...

영화는 총 세 개의 이야기로 진행된다. 1951년 앨런을 소련 스파이로 착각한 경찰이 앨런의 지난 행적이 추적하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되고, 이후 앨런이 경찰에게 제2차 세계대전 중 자신의 행적으로 설명하는 형식으로 암호해독팀에서의 활약이 그려진다. 그리고 중간중간에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앨런의 학창 시절을 보여준다. 확실히 앨런은 사회성이 결여된 그냥 아무것도 아닌 사람으로 치부될 수도 있지만, 그의 그러한 특성은 오히려 누구도 생각해내지 못한 일을 해내는 원동력이 된다. 그렇다면 그의 천재성은 그의 삶에 축복일까? 저주일까? 그의 천재성에 혜택을 받고 있는 우리에겐 축복이지만,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평생 폭력에 시달려야 했던 그에겐 저주가 아니었을까?

2015년 극장에서 볼 당시에도 [이미테이션 게임]을 본 후 먹먹한 기분이 들었지만, 6년이 지난 2021년에 다시 봐도 먹먹함은 여전했다. 특히 영화에 집중하며 중간중간 한숨을 쉬며 앨런의 기구한 인생을 안타까워하던 아들의 표정은 인상 깊었다. 영화 보여 주기를 좋아하고, 영화를 본 후에는 영화가 어땠는지 꼬치꼬치 캐묻는 아빠를 둔 탓에 영화를 보고 나면 짤막하게라도 영화에 대한 평가를 내리던 아들이 이 영화를 본 후에는 묘한 여운이 남는 듯 입을 다물어 버렸다. 하긴 여운이 남는 영화를 봤을 땐 조용히 그 여운을 마음속으로 되새김질하는 것이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


[세인트 주디] - 인류의 보편적인 인권은 성별, 종교, 국적에 상관없이 모두에게 적용되어야 한다.

감독 : 숀 해니시

주연 : 미셸 모나한, 림 루바니

[세인트 주디]는 [이미테이션 게임]과 마찬가지로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한 영화이다. 단, 서로 다른 것이 있다면 [이미테이션 게임]이 앨런 튜링의 성공과 그 성공 끝에 이어진 비극을 그린 영화라면, [세인트 주디]는 캘리포니아 이민 전문 변호사 주디 우드의 위대한 승리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사실 주디 우드의 위대한 승리에 대한 이야기는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멕시코 국경에 거대한 벽을 세우며 폐쇄주의를 전면에 내세운 트럼프 정권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차고 넘치는 열정으로 무장한 이민 전문 변호사 주디 우드(미셸 모나한). 다른 변호사들은 의뢰인을 그저 돈벌이 수단으로 여기지만, 주디는 의뢰인이 믿을 수 있는 마지막 존재가 바로 자신임을 알고 있기에 모든 사건에 최선을 다한다. 그런 그녀가 아프가니스탄 여성 아세파 아슈와리(림 루바니)의 변호를 맡게 된다. 불법 체류자로 본국으로 추방 위기에 놓인 아세파. 그러나 주디는 아프가니스탄 경찰에 의해 강간을 당한 아세파가 집으로 돌아가면 가족들에게 명예 살인을 당할 것임을 알기에 재판에서 그녀의 망명을 주장한다.

하지만 미국의 망명법은 탄압받는 소수 민족과 정치적 지도자에게만 망명을 허락한다. 미국의 망명법에 의하면 지구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은 소수 민족이 아니니 망명을 허락할 수 없는 것이다. 주디는 바로 그러한 미국 망명법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아세파가 여성이기 때문에 강간을 당한 것이 아닌, 여성의 교육을 허락하지 않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어린 여성을 교육한 정치적 행위로 강간이라는 탄압을 받았음을 주장하고 결국 역사적인 승소를 이끌어 낸다.

내가 처음 [세인트 주디]라는 생소한 영화에 관심을 가진 것은 길거리에서 우연히 엿듣게 된 어느 커플의 대화 때문이다. 한 여성이 남자 친구에게 [세인트 주디]에 대한 설명을 하며 잔잔한 영화이지만 너무 감동을 받았다며 적극적으로 추천을 한 것이다. 그로 인하여 본의 아니게 그들의 대화를 엿들은 나까지도 [세인트 주디]에 없던 관심이 생겨 버렸다. 누군가가 그렇게 진심으로 감동을 받은 영화라면 한 번쯤 시간을 내서 봐도 괜찮지 않을까? 그리고 그러한 내 선택은 적중했다. 솔직히 너무 재미있고, 감동이 철철 흘러넘치는 영화는 아니었다. 그래도 주디가 주장하는 인류의 보편적인 인권에 대해서는 깊은 인상을 남겼다.

나라마다 문화가 다르다. 나는 그러한 그 나라의 문화를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한다. 하지만 문화에 대한 존중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류의 보편적인 인권을 지키는 것이다. 아무리 아프가니스탄에서 여성의 교육은 허락되지 않았고, 여성은 그저 가정을 지키며 남성이 시키는 대로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 이슬람 국가인 아프가니스탄의 문화라고 할지라도, 그것은 보편적인 인권에서 벗어난다. 모든 사람은 배울 권리가 있고, 자신의 의견을 세상에 말할 권리가 있다. 단지 배우고, 자신의 의견을 세상에 말했다는 이유로 강간당하고 죽임을 당해야 한다면 그것은 우리 인류가 모두 나서서 지켜줘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지켜야 할 정의이고, 의무가 아닐까?

9.11 테러로 인하여 타인, 혹은 이민자에 대한 시선이 차갑게 변한 미국에서 주디는 홀로 외롭게 인류의 보편적인 인권을 주장한다. 단지 아세파가 이슬람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녀의 인권을 외면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 모두는 그녀의 주장이 정의라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대부분은 법이 그러니 어쩔 수 없다며 포기했다. 모두가 포기할 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아세파를 지켜낸 주디. 그의 용기는 이후 약자로 인정받지 못했던 수 천, 수만 명의 여성을 망명 제도 아래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인정받게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그녀들의 목숨을 구해냈다고 하니 이것이야말로 위대한 승리가 아닐 수가 없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실제 주디 우드 변호사의 모습은 그렇기에 더욱 위대해 보였다.


[프록시마 프로젝트] - 꿈을 위해 앞으로 정진하는 모든 엄마, 아빠들을 위해...

감독 : 앨리스 위노코

주연 : 에바 그린, 젤리 블랑

어린 시절 누구에게나 꿈이 있었다. 나도 꿈이 여러 번 바뀌었었는데, 처음엔 동물학자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정글 깊은 곳에서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새로운 동물을 발견해서 학명으로 내 이름을 붙이고 싶었다. 그러다가 만화가가 되고 싶기도 했고, 소설가, 영화감독도 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한 내 꿈은 성인이 되면서 조용히 잊혔다. 그저 지금은 돈 열심히 벌어서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되고 싶을 뿐이다. 그러다가 나이가 들어 은퇴를 하면 편안한 노후를 맞이하는 나의 유일한 꿈이다. 아마도 나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대부분의 소시민들은 나처럼 성인이 되며 꿈을 잊고 살지 않을까? [프록시마 프로젝트]는 현실 앞에서 꿈을 포기하지 않고 결국 이뤄내는 어느 여성 우주 비행사의 이야기이다.

유럽 우주국 '프록시마 프로젝트'의 대원으로 선발되어 평생소원이었던 우주 비행사가 된 사라(에바 그린). 그녀는 여성이라는 편견과 싸워가며 프랑스인 최초의 우주 비행사라는 꿈을 이루기 직전에 도달했다. 하지만 아직 엄마가 필요한 일곱 살 딸 스텔라(젤리 블랑)이 눈에 밟힌다. 이혼한 남편에게 스텔라를 맡겼지만 하루 이틀도 아니고 몇 개월이나 스텔라의 곁을 떠나 있어야 하는 사라는 마음이 불편하기만 하다. 그리고 결국 우주 비행 전날, 사라는 스텔라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격리 숙소를 빠져나가는데...

우주 비행사에 대한 이야기라고 한다면 당연히 우주가 영화의 배경일 것이라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프록시마 프로젝트]에는 우주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 대신 우주 비행사가 되기 위한 사라의 혹독한 훈련과 지구에 남겨두고 떠나야 할 어린 딸에 대한 절절한 모성애가 그려질 뿐이다. 아마도 SF 영화를 기대하고 이 영화를 선택했다면 상당히 당황스러워할 만한 영화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나는 그래서 더욱 이 영화가 좋았다. 우주 비행사가 되기 위한 훈련이 상세하게 영화 속에 펼쳐지는데, 그동안 대부분의 영화에서 자세하게 그려지지 않은 훈련들이 현실감 있게 펼쳐지니 오히려 내겐 새로웠다.

스텔라를 남겨두고 가야 하는 사라의 입장도 이해가 되었다. 만약 내가 사라였다면 과연 나는 내 꿈을 위해 아직 어린 자식을 남겨두고 떠날 수 있을까? 그건 참 어려운 질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인이 되며 어렸을 적 꿈을 잊어버리는 이유는 바로 가족 때문이기도 하다. 나 혼자라면 꿈을 이루기 위해 실패를 참아낼 수 있지만, 결혼하여 가족이 생기는 순간 실패는 나 혼자 감당해야 할 문제가 아닌 내 가족 모두의 일이 된다. 그렇기에 실패가 동반되는 꿈을 포기하고 단 몇 푼의 월급을 받기 위해 평범한 직장인이 되는 것이다. 사라가 처한 상황도 그러하다. 꿈을 이루기 위한 마지막 기회이지만 엄마가 필요한 스텔라를 보고 있으면 죄책감이 들고 괴로워진다. 그녀는 엄마이니까.

영화의 소재가 소재인 만큼 함께 영화를 본 아들은 약간 지루해 했다. 우주 비행사가 되기 위한 훈련을 받는 장면에서는 흥미로워 했지만 스텔라 때문에 흔들리는 사라의 모습은 아직 어린 아들의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와는 달리 평소 영화만 틀어 놓으면 깊은 잠에 빠져들곤 했던 아내는 웬일로 초롱초롱한 눈으로 영화에 집중했다. 꿈과 스텔라를 사이에 두고 괴로워하는 사라의 입장을 아내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기에 이 영화가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단, 나도, 아내도, 그리고 아들까지 이구동성으로 '이건 아니지.'라고 외친 장면이 있었으니 사라가 스텔라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격리 지침을 어기고 몰래 숙소를 빠져나가는 장면이다. 스텔라를 남겨두고 우주로 가야 하는 사라에겐 작은 일탈일지도 모르지만, 그녀의 일탈이 함께 우주로 가는 동료들을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차라리 그 일탈이 걸려서 그녀가 우주로 가지 못하게 되는 것으로 영화가 마무리되어야 한다고 우리 가족은 모두 생각했을 정도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민망했던 것은 12세 관람가 등급의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에바 그린의 노출씬이 몇 장면 있었다는 것. 비록 옷 갈아입고, 샤워하는 장면 등에서의 가슴 노출이지만 사춘기 아들과 함께 영화를 보다가 괜히 당황스러웠다. 그래도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서 실제 자식이 있는 여성 우주 비행사들의 사진을 보여주는데 가슴이 찡했다. 그녀들도 사라처럼 힘들었을 것임을 알기에... 지금 현실을 위해 꿈을 잊은 채 살고 있다면 꼭 추천하고 싶은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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