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세상에서는/김태일


그대여,
지금 그대 그 모습이 좋다면
그대,
그냥 그 자리에 머물러도 좋아요.
지금 세상에서는 당신찾지 않을께요.


하지만,
언젠가
그댈 잊지 못하는 내가
먼저 이 세상 떠나게 된다면
살아서는 잡을 수 없었던 그대의 손으로
우리 자주 가던 그 곳에 날 묻어주시어
죽어서야 비로소 당신의 손을 잡았다는
그 행복속에서라도
나 살 수 있게 해 주십시요.


그대 사는 동안에
당신이 가꾸는 꽃에
유난히 이슬이 많이 맺힌 날
날 한번 찾아 주십시요.

내 눈물 당신의 꽃에 이슬이 되어
당신 찾아가는 그런 이유일테니...


그대 사는 동안에
유난히,
당신 귀를 간지럽히는 비가 오는 날엔
참고 참다가,
마침내 터진 내 그리움이
당신을 부르는 내 간절한 소리일테니
당신 날 찾아 주시어
내 무덤가에서 날 바라보아 주시고
퍼 붓는 눈물같은 비 보다
더 세차게 날 즈려밟아 주십시요.

죽어서는 정신 좀 차리라고
세게 밟아 주십시요.


다음 세상에서
우연이라도 우리가 스치게 되면
당신에게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도록
세게 밟아 주십시요.

그래도
그래도 내가 당신을 잊지 못 한다면
다음 세상에서는
내가 장님이라도 되어
태어날 수 있게
기도라도 해 주십시요.

그렇게라도
당신 스쳐보낼 수 있게
다음 세상에서는
사랑 안 할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