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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드] - 자본주의가 만든 괴물, 탐욕의 왕이 겪게 되는 흥망성쇠
13  쭈니 2021.01.19 10:49:06
조회 82 댓글 0 신고

감독 : 마이클 윈터바텀

주연 : 스티브 쿠건, 아일라 피셔, 에이사 버터필드

마이클 윈터바텀의 영화는 결코 만만하지가 않다. 영화적 취향이 다분히 대중적인 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영화를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1997년 보았던 [쥬드]에 대한 강렬한 기억 때문이다. 크리스토퍼 에클리스턴과 케이트 윈슬렛이 주연을 맡았던 [쥬드]는 순수한 시골 청년 '쥬드'가 사촌 여동생인 수와 만나 사랑에 빠지면서 겪게 되는 비극을 서정적으로 그린 영화인데, 솔직히 영화 자체는 재미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영화에서 풍겨 나오는 분위기에 압도되어 나로 하여금 케이트 윈슬렛에 흠뻑 빠지게 만들었다. (나에게 있어서 케이트 윈슬렛의 최고 영화는 [타이타닉]이 아닌 [쥬드]이다.)

[그리드]는 음식과 여행을 테마로 한 '더 트립 시리즈'를 통해 마이클 윈터바텀 감독과 철떡 호흡을 보여준 스티브 쿠건이 주연을 맡은 영화이다. '더 트립'은 [트립 투 잉글랜드]를 시작으로 [트립 투 이탈리아], [트립 투 스페인]를 거쳐 최근 [트립 투 그리스]까지 도달했다. [그리드]의 하이라이트가 그리스를 배경으로 하고 있음을 감안한다면 아마도 마이클 윈터바텀 감독과 스티브 쿠건은 [그리드]와 [트립 투 그리스]를 거의 같은 시기에 촬영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리드]의 내용은 간단하다. 자본주의의 허점을 이용해서 패션계의 거물이 된 억만장자 리차드 맥크리디(스티브 쿠건)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가 어떻게 돈 한 푼도 없이 억만장자가 되었는지 영화는 간략하게 소개하는데 은행에서 돈을 빌려 기업을 인수하고, 개발도상국의 값싼 노동력을 이용해서 폭리를 취한 후 이익금은 배당금이라는 면목으로 개인적으로 착복하는 방식이다. 그렇다면 은행 빚은? 은행 빚은 리차드가 아닌 법인의 몫이다. 예를 들어서 리차드가 A라는 기업을 인수하기 위해 A의 이름으로 빚을 내서 A를 인수하는 식인데, 이게 가능한지 의문이지만, 돈이면 무엇이든지 되는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인가 보다.

영화는 리차드가 60번째 생일을 위해 그리스의 해안가에 거대한 콜로세움을 짓고 호화로운 생일 파티를 즐기는 동안, 리차드의 하청을 맡고 있는 스리랑카 여성 노동자들의 열악한 환경을 보여준다. 하지만 리차드는 그것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자신은 그저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원리인 이익을 위해 움직였을 뿐이고, 그로 인하여 희생되는 빈민들에 관심을 가질 이유는 없다고 주장한다. 그가 호화로운 생일 파티를 위해 쏟아부은 거액의 돈을 자신의 하청업체 노동자를 위해 쓴다면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겠지만, 리차드는 '내가 왜?'라고 반문할 뿐이다.

이것은 자본주의의 맹점이다. 돈이 돈을 번다. 가진 자는 더욱 가질 수 있다. 굳이 노동을 하지 않더라도. 그와 반대로 못 가진 자들은 계속 가난해질 뿐이다. 열심히 일을 해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 오히려 가진 자의 착복으로 인하여 깊은 수렁에 빠질 뿐이다. 리차드의 직원인 스리랑카 출신의 아만다의 어머니가 겪게 되는 비극은 가진 자의 착복으로 인하여 못 가진 자가 어떻게 가난의 수렁에 더욱 깊숙하게 빠지는지 보여주는 예이다.

영화의 주제는 꽤 심각하다. 하지만 마이클 윈터바텀 감독은 심각한 주제는 가볍게 풀어낸다. 탐욕의 왕이라 불리는 냉정한 사업가 리차드를 코미디 연기에 일가견이 있는 스티브 쿠건을 캐스팅한 것만 봐도 그렇다. 스티브 쿠건은 리차드를 과장된 연기로 표현해 내는데, 덕분에 [그리드]는 코미디 장르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날카로운 자본주의에 대한 풍자를 잃지 않는다. 특히 리차드의 최후는 이 영화의 백미. 리차드의 최후가 그가 그토록 무시했던 빈민가 출신 여성의 작은 손짓에서 비롯되었음은 꽤 의미심장하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많이 가졌건, 적게 가졌건, 이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연결되어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마이클 윈터바텀 감독의 영화가 그러하듯 [그리드] 역시 재미있다며 추천하기는 좀 어렵다. 스티브 쿠건, 아일라 피셔, 에이사 버터필드 등 유명 배우들의 코미디 연기도 볼만하고 (특히 리차드의 시니컬한 아들 핀을 연기한 에이사 버터필드의 연기는 인상적이다.) 1시간 44분이라는 적당한 러닝타임 동안 지루할 틈은 없었지만, 영화의 주제가 너무 노골적이고, 마지막 장면은 호불호가 갈릴만 하다. 그래도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촌, 그리고 지구촌을 움직이는 자본주의에 대한 거장의 통렬한 풍자는 [그리드]가 충분히 가치 있는 영화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그리드]를 봤다면 그러한 가치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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