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은 어려서부터 취약한 상태를 내보이면 안 된다고 배운다.

그리하여 남자로서의 자존심을 유지할 수 없는 열패감이

남자를 우울하게 만든다. 그래서일까, ‘남자다운 남자’일수록 더 우울하다.

링컨은 우울증 환자였다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존경받는 에이브러햄 링컨은 뜻밖에도 극심한 우울증 환자였다고 한다. 켄터키 통나무집에서 태어난 극빈 소년은 사춘기의 첫사랑에 영혼을 바친다. 하지만 그녀가 전염병으로 죽는다. 실성한 청년 링컨의 모습을 본 동네사람들은 그가 미쳤다고 진단했다.

링컨이 살던 시대에 ‘멜랑콜리Melancholy’라는 단어는 여자보다 남자를 묘사하는 데 더 많이 사용되었다. 감성이 풍부한 사람이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연민의 정이 깊다는 이론도 있다. 링컨은 개인적 우울증을 사회적 사명감으로 극복한 의지의 사나이였다. 미국 작가 조슈아 울프 생크는 평생 자신의 약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링컨의 열정적인 삶에 대해 《링컨의 우울증Lincoln’s Melancholy》에서 이렇게 썼다.

“남자들은 취약한 상태를 내보이면 안 된다.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지는 남자는 자신을 수치스럽게 생각한다.”

몇 해 전에 한 현직 부장판사가 용기 있는 고백을 했다. 과거에 자신이 우울증 때문에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다는 내용을 변호사협회지에 상세하게 기록했다. 그는 법조계 동료와 선후배들 중에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을 많이 보았기에 그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커밍아웃’을 선언한다고 썼다.

그는 글에서 우울증이란 자신이 증상을 인정하고 전문가의 도움을 얻으면 완치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당시 법원 내부에서는 누구도 판사로서의 그의 역량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의 용기에 감탄한 나는 그와 소식을 주고받았다. 당시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정신장애인 인권 국가보고서를 작성하던 중이라 그의 존재가 편견 해소에 귀중한 자산이 된다고 판단했다. 그는 나의 추천으로 국제정신건강 법률가단체의 자문위원으로 위촉되기도 했다.24

문제를 인정하지 않는 남자

몇 해 전 오스트리아 작가 고트프리트 휘머의 《가끔은 남자도 울고 싶다》라는 제목의 책이 나왔다. 물론이다. 실은 잘 우는 남자가 더욱 여자의 사랑을 받는다. 다만 여자는 결정적인 상황에서는 우는 남자를 떠난다. 위기가 닥쳤을 때 기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남자는 여자 앞에서 맘대로 울지도 못한다. 운다는 것은 자신이 다정다감하기보다는 약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흔히 우는 남자는 비정상으로 취급받는다. 그만큼 남자들은 자신에게 심리적 문제가 있다고는 상상도 못한다고 한다. 남자들이 심리치료를 받지 않으려는 이유는 우선 자기 내면을 보기가 두려워서일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깊은 이유는 자신이 잘못되었을 리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프로이트 시대부터 정신과 병원 고객이 주로 여자인 까닭은 여자들이 더 문제가 많기 때문이 아니다. 상대적으로 여성이 자신에 솔직하고, 그래서 더 많은 불편을 느끼기 때문이다. 대단히 사려 깊고 용기 있는 남자만이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25

이른바 ‘남자다운 남자’가 더 우울하다. 남자의 우울은 주로 직업과 관련된 것이다. 가족 부양에 대한 책임의식, 직업적 안정성의 결여, 직장에서 결정권의 부족, 경쟁에서 뒤처지는 열등감 등등 남자로서의 자존심을 유지할 수 없는 열패감이 남자를 우울하게 만든다.26 결정적인 타격은 실직이다. 세상살이에서 '을'의 지위에 내몰린 남자는 ‘갑’을 질시하며 우울해진다.

- 위 본문에서 인용한 글

25. 김형경, 《남자를 위하여》, 창작과비평

26. 포브스 윈슬로, 유지훈 옮김, 《자살의 해부학》, 유아이북스

- 참고한 책: 《남자란 무엇인가》

https://goo.gl/Q1ygI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