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신작 <엑스맨 : 아포칼립스>를 감상하였습니다. <엑스맨 시리즈>는 마블의 동명 코믹스를 원작으로 20세기 폭스가 판권을 수입해 영화화하여 총 3부작을 선보인 시리즈 물이죠. 이후 시리즈를 리부트 하겠다고 선언한 20세기 폭스는 <퍼스트 클래스>,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를 선보이며 "환상적인 리부트다"라는 찬사를 받게됩니다. 그리고 이번에 개봉한 <엑스맨 : 아포칼립스>는 이 환상적인 리부트의 마침표가 될 작품이고요.

엑스맨과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관계에 대해 말씀 드리자면, 2000년 엑스맨 영화의 시작을 알린 감독이 바로 브라이언 싱어입니다. 브라이언 싱어는 코믹스 원작의 중심에 있었던 스캇을 대신해, 울버린을 정면에 내세운 것을 필두로 하여 코믹스 원작과는 완전히 다른 엑스맨의 세계관을 구축하는 실험을 하게 되죠. 코믹스 원작의 팬층이야 이견이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브라이언 싱어의 엑스맨은 흥행력과 작품성 모두에서 인정받았고, 당시 시리즈의 위상이 지금의 MCU 히어로물과 버금간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이 위대한 시리즈가 마무리되어야 할 때에, 브라이언 싱어는 <슈퍼맨 리턴즈>로 잠시 외도를 하게 됩니다. 결국 마지막 영화인 <엑스맨 : 최후의 전쟁>의 메가폰은 블랫 래트너에게 넘겨야 했고, 우리가 알다싶이 그 결과물은 매우 처참했죠. 때문에 브라이언 싱어 본인에게 있어서도, 그리고 엑스맨을 사랑하는 많은 팬들에게 있어서도 그가 직접 엑스맨 시리즈를 마무리 한다는 것은 정말 설레는 일이 아닐 수 없을 겁니다. 더군다나 그의 복귀작인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가 이렇게나 센세이셔널한 반응을 일으키고 있다면 말이죠.

영화의 인트로는 고대 이집트에서 시작됩니다. 장엄하고 웅장한 황금빛 피라미드가 비춰지는 가운데, 압도적인 존재감을 풍겨대는 아포칼립스와 고대 포 호스맨 떡하니 자리잡고 있는데 . 이집트인들에게 아포칼립스는 신처럼 추앙받고 있고, 아포칼립스는 전이의식을 통해 더 강해진 자신을 받아들일 준비를 합니다. 그러나 아포칼립스가 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반란 세력에 의해 그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아포칼립스는 수천년간 봉인되게 되죠. 이후 다시 깨어난게 1983년입니다. 수천년전 아포칼립스는 봉인되었지만, 지금은 그자리를 권력과 자본이 다시하고 있고. 인류는 그것을 추앙합니다. 인류의 이기심과 추악함에 아포칼립스는 환멸을 느끼고.  또 다시 포 호스맨을 모아 인류를 멸하고 강한 뮤턴트만의 세계를 만들 계획을 세웁니다.

가장 먼저 이번 신작은 성서의 가장 마지막을 장식하는 책인 '요한계시록'의 주제를 적극적으로 인용합니다. 영화의 빌런인 '아포칼립스'와 '포 호스맨'등은 모두 성서에서 빌려온 설정들로. '아포칼립스'는 세계의 종말을 뜻하고, '포 호스맨'은 실제로 성서에서 언급된 네명의 기사들을 뜻하죠. 뿐만아니라 요한계시록의 주제인 '심판론'을 엑스맨의 세계관에 적극 대입하여 이야기를 전개시켜 나가는데, 결국 아포칼립스는 타락한 인류를 심판하고 강력한 돌연변이만의 세상을 만들려는 주체이고, 요한계시록에서 언급한 심판의 날이 곧 다가온 것입니다.

엑스맨 영화의 역사에서는 유례가 없게도, 이번 신작은 쟁쟁한 엑스맨의 캐릭터들을 제끼고 '아포칼립스'라는 빌런의 이름을 당당히 타이틀에 내걸었습니다. 영화에서 묘사한 '아포칼립스'는 고대최초의 돌연변이체로, 자신의 신체가 노쇠화 했을때 다른 돌연변이로 전이할 수 있고, 그 돌연변이의 능력까지 모두 축적하는 무시무시한 능력을 가지고 있죠. '아포칼립스'는 지금까지 엑스맨 시리즈가 선보인 빌런 중 가히 최고의 힘을 가진 빌런일겁니다.

게다가 이를 지지하는 '포 호스맨'의 면모는 또 어떠합니까. 새로운 얼굴인 '샤일록' 부터, 이전 시리즈에서 굉장한 존재감을 보여주었던 '스톰'과 적은 비중에도 훌륭한 씬 스틸러였던 '엔젤'이 합류했습니다. 게다가 이 영화의 또 한명의 주인공이자, 엑스맨 역대 최강의 뮤턴트인 '매그니토'가 이들과 함께 하고요.

그런데 이들의 이름만 들어도 지려야 할 '아포칼립스'와 '포 호스맨'의 포스가 기대에 훨씬 못 미칩니다. 뮤턴트로서 이들이 갖고 있는 파워가 약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모래섬 위에 성이 쉽게 무너지듯, 불안한 이들의 관계속에 환상적인 팀워크가 발휘될 수는 없었습니다. 사실 매그니토를 제외하면 이들이 세계 인류를 종말시키는 이 사악한 미션에 힘을 보탤 이유는 딱히 없었습니다. 아포칼립스가 무소불위의 힘을 전해주고 성인군자처럼 씨부리면 저절로 포 호스맨이 되는데. 도대체 이들이 포 호스맨으로 선택받은 이유는 무엇이며, 아포칼립스에 반하는 '엑스맨'과 아포칼립스를 지지하는 '포 호스맨'의 차이점이 도대체 뭡니까.

캐릭터 리부트에 대해서 잠시 얘기하자면, 스톰, 스캇, 진, 나이트크롤러와 같은 기존의 인기 캐릭터 리부트로 많은 기대를 모았지만. 이전 시리즈의 주역들이 갖고 있는 존재감에 훨씬 못 미칩니다. 이에 비해 이들의 역할은 굉장히 중요하게 그려지는데, 이들의 능력치가 그에 훨씬 못 미쳐 내내 버거워 보입니다. 같은 장면인데 '팜케 얀센'과 '소피 터너'의 격차가 굉장히 크게 느껴지더군요.

이렇게 보면 리부트된 이전 두 작품에서 미스틱을 맡아 보다 높은 궤도로 끓어 올린 '제니퍼 로렌스'나 행크스 박사의 '니콜라스 훌트'가 정말 대단해 보이긴 합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이 배우들에 더해 이 영화의 주인공인 제임스 맥어보이에게 조차 제대로 매력 어필할 기회를 주지 않습니다. 퀵실버가 그나마 제몫은 하는편인데, 역시 전작의 재탕 느낌이 나는 연출이라 그만큼의 센세이셔널한 느낌은 많이 반감 되었고요. 이러한 캐릭터 무비에서 비중의 적절한 분배가 중요하다고는 하나, 이 작품 처럼 감정이입할 캐릭터가 단 한명도 없다면, 이건 곧 캐릭터무비로서의 동력 자체를 손실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영화가 철학적으로 보이려는 시도는 합니다. 아포칼립스를 빌어 신의 기원에 대해 잠시 터치하기도 하고. 1980년대 냉전시기의 시대상을 빌어 인간의 정복욕과 권력욕을 까발리기도 합니다. 어차피 강한자만을 위한 역사이고, 지금까지도 그래왔기에 아포칼립스의 철학에 정당성을 부여하기도 하죠. 그런데 그 깊이가 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클라이 맥스에 떡하니 철학적인 내면 싸움을 위치시킵니다.

게다가 우리가 기대한건 무소불위의 파워를 가진 아포칼립스와 이에 대적하는 엑스맨이 선사하는 액션의 쾌감 아닙니까. 최고의 힘을 가진 빌런으로서 '아포칼립스'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는 클라이 맥스와 함께,  왜 엑스맨은 '진'이 아니면 영화를 끝내는 법을 모르는 걸까요. 결말은 단순히 빌런들의 변절에서 비롯되는 게으른 방식을 택했는데, 사실 아포칼립스와 포 호스맨의 관계랄게 없어서 당황스럽지도 않습니다. 정말 브라이언 싱어는 그 정도로 배경 스케치에 공을 들여놓고, '샤일록'이 차나 썰어주면 그걸로 만족할 줄 알았을까요.

<액스맨 : 아포칼립스>
'브라이언 싱어', 내가 실망이 크다
★★☆(4.6 /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