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 2년이 다 된것 같은 용의자 X의 헌신. 너무 오래된 기억인지, 가물가물한 추억이 되버린 것인지. 용의자X라는 제목의 영화 포스터를 볼 때만 해도 이 영화가 용의자 X의 헌신의 리메이크 판인지 인식조차 하지 못했다. 얼마 전 나름대로 흥미있게 봤던 화차 또한 그런 연장선에 있지 않았을까? 원작의 임팩트라는 것, 모르긴 몰라도 역시 무서울 만큼 사람의 머릿속에 각인되어 뿌리박힘을 선사하는 것 같다.

스토리라인이 이미 존재하는 시너지는 잠시 잊어두기로 한다면, 리메이크가 갖는 부담감과 그 리스크는 대작일수록 클 수밖에 없다. 최고가 최초를 이길 수 없는 경우를 우리는 영화 속에서 너무 만이 봐 왔기 때문이기도 한데. 원작을 넘어서려면 원작에는 없는 엄청난 반전이 있거나, 또 다른 미친 상상력으로 결말을 다르게 하는 게 효과적이다. 하지만 이런 도전이 말처럼 쉽나? 리메이크 작품에서 플롯 하나 때문에 스토리 라인을 싹 다 뜯어고쳐야 한다니, 그럴 바엔 에이퉤하며 시나리오를 하나 더 쓰는 게 연출자에게도 완성도가 더 높을 것이다.

이렇게 골머리 아픈 리메이크 영화가 속작이 아닌 신선함을 주는 또 다른 최초로 인식되고 각인되려면 뭔가 또 다른 카테고리가 있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용의자X는 일단 성공적이다. 그 결과가 흥행이건 쪽박이건 작품 속에서는 나름의 만족을 주고 있었다. 이미 용의자X의 헌신을 감상하고, 용의자 X를 모두 감상한 독자들이라면 눈치채고 있을 것이다. 두 영화의 같지만 다른 근본적인 차이를. 바로 용의자 X의 헌신이 남자의 책임감과 무게감, 말 그대로 헌신에 포커스를 두고 있다면, 용의자X는 무게 중심의 시소를 조금 더 말랑말랑한 사랑에 내려놓고 있다.

이는 굳이 영화 속으로 들어가 보지 않더라도 비스듬히 알 수 있다. 포스터에서 비치는 뉘앙스만으로도 방은진 감독이 이 영화 속에 어떤 미쟝센의 밸런스를 원하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그 러브라인에는 한국적인 진득한 감성, 즉 방은진이라는 여자 감독의 섬세한 드라마가 잘 녹아있다. 특히 원작에는 없었던 마지막 장면은 영화 통증의 결말을 보는 듯한 가슴 시린 애틋함이었다. 

화선이 석고를 따라가며 왜 그렇게까지 했냐고 눈물을 흘릴 때, 석고는 교도소로 가는 버스 안에서 머리를 처박고 눈물을 숨긴다. 버스가 달리고 있건 말건 화선은 창문을 두드리며 석고를 부른다. 그 애틋한 장면에서조차 저 여자 버스에 부딪히지는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고, 그 디테일은 몰입에서 스스로를 빼내오지 못하는 주 원인이었다. 류승범이 주연이기 때문이 아니라, 마치 리쌍의 뮤직비디오 내가 웃는게 아니야를 보는 듯 애통한 마지막 장면. 카메라와 특수효과, 편집까지 정말 이 장면을 위해 신경을 많이 썼구나 싶었다.

최근들어 1년에 1-2편. 많게는 3-4 편의 일본영화 리메이크작이 국내 개봉관을 두드리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의 감성과 우리의 감성은 혼연일체는 아니지만 단연 교집합이라는 것은 인정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짜임새와 발상이라는 기묘한 상상력, 카테고리 내에서의 또 다른 진화. 분명 우리 영화계의 구조적인 자체적 한계와 비교했을 때 비교적 자유로운 그들의 감성이 우리 가슴을 두드릴 때가 많다.  

용의자x의 제목에 두 글자가 빠졌다면 그건 뭘까? 단연 사랑에 가깝지 않을까? 원작의 느낌을 최대한 살리려 노력한 결과인지는 모르겠지만, 방지은 감독은 이 영화의 제목에서 용의자x의 사랑도, 헌신도 아닌 용의자x로 지어버렸다. 용의자x의 모든 게 다 들어있지 않았다면, 용의자x의 타이틀은 뭔가 아쉬웠을 것이다. 방지은 감독은 원작에서 2% 부족했던 러브 드라마를 새겨넣고 '헌신'이라는 두 글자를 치워버렸다. 마지막 장면에 그렇게 신경을 많이 쓰고도 용의자x의 사랑이라는 제목을 붙이지 않은 건 방은진 감독 나름의 헌신이 아니었을까라고 상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