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외신기자 협회가 주관하는 골든 글로브 시상식은 아카데미 시상식이 임박한 시기에 열려 아카데미의 전초전으로 유명하다. 실제로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수상한 영화와 감독, 배우들이 아카데미 시상식의 수상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2020년 골든 글로드 시상식에서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한 [기생충]은 아카데미에서 작품상을 수상하는 이변을 연출했고, 2019년 [그린 북], 2017년 [문라이트] 등의 영화들이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먼저 주목을 받은 후 아카데미 시상식까지 거머쥐었었다.

코로나19가 북미를 강타하는 바람에 극장이 수난을 겪었던 2020년. 그만큼 극장 개봉작보다 새로운 영화의 플랫폼으로 각광받고 있는 OTT 특히 넷플릭스 영화가 주목을 받았다. 그러한 상황을 대변이라도 하는 듯이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도 넷플릭스 영화들이 많이 보인다. 드라마 부문 작품상에 오른 데이빗 핀처 감독의 [맹크], 아론 소킨 감독의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 뮤지컬 코미디 부문 작품상에 오른 [더 프롬]은 강력한 작품상 후보이며, 그 외에도 글렌 클로드가 여우 조연상 후보에 오른 [힐빌리의 노래], 장편 애니메이션상 후보에 오른 [오버 더 문]도 있다. 그중에서도 이번 주말에는 여우조연상 후보작인 [뉴스 오브 더 월드], 드라마 부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그녀의 조각들], 드라마 부문 남여주연상 후보에 오른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를 봤다. 과연 이들 영화는 수상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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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오브 더 월드] - 앞으로 나아가려면 먼저 과거를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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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폴 그린그래스

주연 : 톰 행크스, 헬레나 젱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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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제78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여우조연상(헬레나 젱겔), 음악상(제임스 뉴튼 하워드) 노미네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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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헬레나 젱겔의 연기는 인상적이다. 연기 경력이라고는 2019년 독일 영화인 [도주하는 아이]가 전부인 거의 신인급 아역 배우임에도 불구하고 [뉴스 오브 더 월드]에서 어린 시절 인디언의 손에 키워진 백인 소녀 조한나의 연기를 신비로운 분위기 속에 멋들어지게 연기해냈다. 그녀의 연기가 더욱 빛이 났던 것은 연기에 대해서는 도가 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톰 행크스 앞에서 결코 주눅 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헬레나 젱겔의 여우조연상 수상은 힘들어 보인다. 함께 후보에 오른 [힐빌리의 노래]의 글렌 클로즈, [맹크]의 아만다 사이프리드가 워낙 강력하고, 그 외에도 올리비아 콜맨, 조디 포스터 등 경쟁자들의 이력도 화려하다. 아직 앞날이 창창한 배우인 만큼 노미네이트로 만족해야 할 듯... (나는 글렌 클로즈에게 한 표를 던지고 싶다.)

[뉴스 오브 더 월드]는 미국의 남북전쟁이 끝난지 5년 뒤인 1870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남군인 제3텍사스 보병대 대위 출신인 제퍼슨 키드(톰 행크스)는 전쟁이 끝난 후에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텍사스 마을을 순회하며 사람들에게 신문을 읽어주고 돈을 받으며 떠돌이 생활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백인의 공격으로 나무에 목이 매달린 흑인과 어린 소녀 조한나(헬레나 젱겔)를 발견한다. 그녀는 6년 전 인디언의 습격으로 부모가 죽고, 인디언에 손에 키워졌었다. 그러다가 다시 백인의 공격으로 그녀를 키운 인디언 부모가 죽어 두 번째로 고아가 되는 기구한 운명을 타고났다. 키드는 조한나를 그녀의 유일한 혈육인 숙모에게 데려다주기 위해 험난한 여정에 오른다.

영화의 분위기는 삭막하다. 남북전쟁에서 패하며 패배의식에 젖어있는 텍사스주의 사람들, 황량한 사막, 그리고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들, 키드와 조한나의 여정은 위험천만하기만 하다. 실제로 조한나를 키드에게 빼앗아 사창가에 팔려는 알메이 일당과 총격전을 벌이고, 미국에 백인만 남을 때까지 결코 전쟁을 멈출 수 없다는 미치광이 독재자 팔리가 지배하는 마을에 끌려가서 팔리를 찬양하는 가짜 신문을 읽으라는 강요를 당하고, 사막 한가운데에서 모래 폭풍과 만나 생매장될뻔하기도 한다. 그래도 키드와 조한나는 묵묵히 여정을 계속한다.

이렇게 삭막하기만 한 영화의 분위기에서도 조한나라는 캐릭터는 빛을 발한다. 조한나는 백인 아이이지만 인디언에 의해 키워진 탓에 인디언의 언어를 하고, 인디언의 생활 습관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조한나 입장에서는 키드와의 여정은 낯설고 두렵다. 하지만 자신을 대하는 키드의 진심을 이해하게 되고 나중에는 키드에게 마음의 문을 열어 준다. 문제는 오히려 키드가 조한나에게 마음의 문을 열어줄 준비를 미처 하지 못했다는 것.

두 번이나 고아가 된 조한나만큼 키드에게도 마음의 상처가 있다. 전쟁 도중 사랑하는 아내가 콜레라에 걸려 혼자 쓸쓸히 죽어 간 것. 키드는 아내의 죽음이 자신에 대한 신이 내린 형벌 같았다. 전쟁에서 자신이 보고 행한 것들에 대한 가혹한 형벌. 그는 죄책감을 안은 채 아내가 묻혀 있는 고향에 갈 용기가 없었다. 과거의 상처를 안고 있는 조한나에게 과거를 잊으라고 조언하는 키드. 하지만 오히려 조한나는 앞으로 나아가려면 과거를 직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키드는 조한나와의 여정을 통해 오히려 과거를 외면하지 않고 똑바로 쳐다볼 용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케빈 코스트너 감독, 주연의 영화 [늑대와 춤을]을 생각났다. 백인들은 원주민인 인디언을 내쫓고 아메리카 대륙을 점령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백인이 승자이고 인디언이 패자인 것은 아니다. 결국 백인도 인디언을 통해 삶의 진리를 배우게 된다. [늑대와 춤을]에서 남북 전쟁의 한가운데에서 삶의 목표를 잃고 비틀거리던 존 던바(케빈 코스트너) 중위가 그러했듯이, 그리고 조한나를 통해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는 키드가 그러했듯이... 영화의 마지막 다시 조한나를 찾아가 용서를 비는 키드의 모습은 그렇기에 찡했다. 이제 이 두 사람은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주며 함께 앞으로 향해 나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본 슈프리머시]와 [본 얼티메이텀]을 통해 무미건조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차가운 스릴을 느낄 수 있는 스파이 영화를 만들어냈던 폴 그린그래스 감독의 잔잔하지만 감정의 파동이 느껴지는 연출력도 돋보이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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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조각들] -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있는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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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코르넬 문드럭초

주연 : 바네사 커비, 샤이아 라보프, 엘렌 버스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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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제78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드라마 부문 여우주연상(바네사 커비) 노미네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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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는 내내 '분명 낯이 익은데 누구지?'라는 의문이 나를 지배했다. 바네사 커비에 대한 이야기이다. 분명 바네사 커비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어바웃 타임], [쥬피터 어센딩, [에베레스트], [미 비포 유] 등 나에게 익숙한 영화 리스트가 가득 채워져 있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을 나에게 각인시킨 영화는 2018년 국내 개봉했던 액션 영화 [미션 임파서블 : 폴 아웃]에서였다. 그 영화에서 아름답지만 위험한 매력을 지니고 있는 무기 중개상 화이트 위도우를 연기했었는데, [그녀의 조각들]을 보는 도중 '맞아 그 영화에 출연했었지.'라고 결국 기억해 낼 정도로 굉장히 강렬했었다. 하지만 이제 바네사 커비의 대표작인 [미션 임파서블 : 폴아웃]이 아닌 [그녀의 조각들]이 될 전망이다. 제77회 베니스 영화제에서 [그녀의 조각들]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그녀의 전성기는 이제 시작이며,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도 강력한 후보임에 분명하다.

[그녀의 조각들]은 병원이 아닌 집에서 출산을 하고 싶었던 젊은 부부 마사(바네사 커비)와 숀(샤이아 라보프)의 이야기이다. 모든 것이 순조로워 보였다. 원래 조산사가 다른 산모의 출산 때문에 오지 못하고 다른 조산사인 에바가 오긴 했지만 괜찮을 줄 알았다. 하지만 아기는 태어난 지 몇 초 후에 심장이 멎어 버렸고, 마사와 숀의 일상은 그 순간부터 산산조각이 나버린다. 조산사에게 책임을 물어야만 했다. 이 비극이 조산사의 탓이 아니라면 내 탓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마사의 어머니인 엘리자베스(엘렌 버스틴)은 변호사를 선임하여 민사 소송을 준비한다. 그와는 달리 숀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결국 고향으로 도망쳐버린다. 과연 무엇이 옳은 것일까? 어떻게 해야 이 비극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일까? 에바의 재판에서 증인석에 선 마사는 선택을 해야 한다. 자신을 위해, 그리고 단 몇 초동안 삶을 살았던 자신의 아기를 위해...

솔직히 [그녀의 조각들]은 정말 정말 보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결코 영화의 만듦새에 대한 의심 때문이 아니다. 내가 [그녀의 조각들]은 피하고 싶었던 이유는 영화의 소재 때문이다. 한 아이의 아빠로써 아무리 영화 속의 이야기라고 하지만 어린 자식의 죽음은 너무 아프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녀의 조각들]은 보는 내내 그랬다. 내가 만약 마사라면, 내가 만약 숀이라면, 영화의 캐릭터에게 감정이입을 하는 순간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이 밀려 들어왔다.

헝가리 출신의 코르넬 문드럭초 감독은 관객에게 마사의 고통을 고스란히 느껴보라고 강요한다. 영화 초반 마사의 출산 장면은 거의 30분 동안 지속되는 롱테이크로 찍혔는데, 18년 전 아내의 출산 현장에서 느꼈던 막막한 두려움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문제는 막막한 두려움의 끝이 출산의 기쁨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러한 사실을 알고 영화를 봤음에도 불구하고 긴 출산 끝에 찾아온 마사의 비극은 나에게 정신적인 충격을 안겨줬다. 이럴 줄 알았기 때문에 나는 진정으로 이 영화를 피하고 싶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과연 조산사인 에바의 잘못일까? 객관적으로 봤을 때 에바는 잘 대처한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마사의 가족들은 에바를 비난하며 그녀가 이 모든 비극의 원인이라고 몰아붙인다. 사실 마사도 알고 있었다. 에바는 아무 잘못도 없다는 것을. 하지만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당당했던 그녀이지만 자신을 동정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그녀 또한 에바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을 하지 못한다. 어쩌면 내가 마사의 입장이었어도 마찬가지였을 듯. 그것이 사람의 기본적인 방어기제일 테니까.

그렇기에 영화의 마지막 마사의 용기는 진심을 다해서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재판장에서 그녀의 마지막 진술은 눈물이 핑 돌았다. 비록 몇 초 밖에서 살지 못했지만 그 아이가 세상에 온 이유는 다른 사람들에게 아픔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함으로써 마사는 에바를 용서했고, 자기 자신을 용서했다. 미완의 다리가 완공된 것처럼, 사과씨가 발아가 된 것처럼, 마사는 새롭게 시작할 것이다. 과거의 아픔을 딛고...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용서해야 한다. 특히 자기 자신을... [그녀의 조각들]은 나에게 너무나도 아픈 영화였지만 영화가 가지고 있는 주제의 의미만큼은 굉장히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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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 - 채드윅 보스만의 마지막 연기 열정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값어치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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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조지 C. 울프

주연 : 체드윅 보스만, 비올라 데이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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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제78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드라마 부문 여우주연상(비올라 데이비스), 드라마 부문 남우주연상(채드윅 보스만) 노미네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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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놀라웠다. 영화를 보면서도 젊고 야심만만한 트럼펫 연주자인 레비가 채드윅 보스만일 것이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내 기억 속의 채드윅 보스만은 [블랙 팬서]의 근육질 히어로였기 때문이다.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의 레니는 근육질 히어로하고 거리가 먼 캐릭터이기에 이 영화에 채드윅 보스만이 출연을 한다는 사실을 얼핏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레니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크레딧이 올라가고 채드윅 보스만의 이름을 확인하는 순간의 놀라움은 정말 대단했다. 대장암 투병 중에도 연기에 대한 열정을 내려놓지 않았던 캐드윅 보스만의 유작. 그것만으로도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는 충분히 대단한 영화이며, 그가 남우주연상을 타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미안하다, 게리 올드만. 그대의 연기도 대단했지만 채드윅 보스만에게 이번엔 양보하면 안 되겠니?)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는 1927년 시카고의 녹음실에 모인 블루스의 어머니, 마 레이니(비올라 데이비스)와 그녀의 밴드가 앨범을 녹음하는 몇 시간의 여정을 담은 영화로, 오거스트 윌슨의 연극을 각색한 작품이다. 흑인에 대한 인종 차별이 심했던 시절, 블루스 음악으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마 레이니는 백인 제작에게 온갖 갑질을 하며 앨범 녹음에 나선다. 사실 그녀가 이렇게 갑질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만만하게 보였다가는 백인들에게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오랜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야심이 많은 젊은 트럼펫 연주자 레비(채드윅 보스만)는 자신이 작곡한 음악으로 새로운 밴드를 만들기를 희망하며 마 레이니가 시키는 대로만 하는 다른 밴드 멤버들을 무시한다. 그들의 작은 갈등은 점점 심해지고, 결국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이 되어 버린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는 실망스러웠다. 물론 나의 실망은 영화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되었다. 나는 이 영화가 흑인들의 삶과 영혼이 담긴 블루스에 대한 음악 영화일 것이라 기대한 것이다. 영화의 제목도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이니 나는 마 레이니가 인종 차별을 딛고 블루스의 어머니로 성공하는 일대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음악 영화가 아니다. 연극을 각색한 영화답게 영화는 제한된 공간, 제한된 시간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연극적인 요소로 풀어내는 영화였다.

처음엔 어리둥절했다. 그저 앨범 녹음을 위해 모인 그들이 쉴 새 없이 말 배틀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한 가운데 비딱한 레니는 처음부터 나에게 거부감을 일으켰다. 다른 나이 많은 선배 밴드 멤버들을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그는 마 레이니의 여자를 유혹하는 등 결코 해서는 안 될 짓들을 서슴지 않고 자행한다. 그러면서 오히려 큰 소리를 친다. 내가 뭘 잘못했냐면서 자신이 무조건 옳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마치 백인에게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일부러 갑질을 하는 마 레이니를 연상시킨다.

실제로 레니가 가지고 있는 콤플렉스는 백인에 의해 집단 강간당한 어머니와 그에 대한 복수에 나섰다가 교수형에 처한 아버지에 대한 기억에서 기반한다. 마 레이니가 그러했듯이 레니 역시 이 불공정한 삶에 꺾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자신이 조금이라도 약한 모습을 보였다가는 모든 사람들이 하이에나처럼 달려들 것임을 알고 있었다. 문제는 마 레니는 이미 성공의 위치에 올라섰기 때문에 그래도 상관없었지만, 이제 막 트럼펫 연주자로 시작한 햇병아리 레니는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이다. 결국 레니는 스스로 무너지고 만다. 닫힌 문을 억지로 열고 나갔더니 높은 벽만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자신을 너무 과신했던 그는 또 다른 벽에 부딪혀 좌절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충격이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또 다른 벽에 부딪힌 그가 자신의 좌절을 나이 많은 동료 밴드에게 화풀이를 하는 장면은 인종차별 속에서 성공하기 위해 발버둥 쳤던 레니를 더욱 깊은 수렁에 몰아넣는다. 레니가 작곡한 것이 분명한 곡을 가로챈 백인 제작자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유유히 작업실을 떠나는 마 레이니의 모습. 영화가 끝나고 레니가 실존 인물인지, 실존 인물이라면 어떻게 되었는지 알고 싶었지만 조지 C. 울프 감독은 마 레이니의 사진만으로 영화를 끝내 버린다. 마치 레니가 실존 인물이라고 할지라도 그의 존재는 영원히 지웠다는 듯이... 죽은 시체를 안고 울부짖는 레니의 모습은 이제는 세상을 떠난 채드윅 보스만의 마지막 연기 열정에 더해져 깊은 여운을 안겨줬다. 분명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는 기대에 어긋난 영화였지만 채드윅 보스만의 열정만큼은 가슴 깊숙이 후벼드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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