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바론 요새 The Guns of Navarone
“1943년 영국군 2천명이 에게해의 있는 케로스섬에 갇힌다. 독일군은 당시 중립을 지키고 있는 터키에 위협을 가해 전쟁에 끌어들이려 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기 위한 장소로 터키에서 몇 킬로미터 밖에 떨어지지 않은 군사적인 가치도 없는 케로스라는 섬을 택한다. 독일 군대 중에서 최정예 부대가 출전할 준비를 끝내고 케로스의 영군 병사들은 대공세에 빠져나오지 못한다면 몰살당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케로스로 가는 유일한 길은 그 근처에 있는 '나바론'이라는 섬의 두대의 거포가 막고 있었다. 최신 레이다 장비를 갖춘 두 대의 거포는 연합군의 어떠한 전함도 당할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그레고리 펙이 등장하는 영화라서 보게 됐지만 생각보다 근사한 완성이었다. 본 다음에야 수많은 전쟁 영화들 중에서도 꽤 중요한 영화로 언급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충분히 그런 평가를 받을 영화였고 우연히 봤지만 아주 만족스럽게 즐길 수 있었다.
“1961년 최고 흥행영화. 도데카니사 전투를 바탕으로 한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작가는 제2차 세계대전 중 가상의 영국 해군 순양함 HMS 율리시즈 함의 사투를 그려낸 것으로 유명한 여왕폐하의 율리시즈호의 작가인 알리스테어 맥클린(Alistair MacLean, 1922~1987)으로, '미군 만세!!'인 할리우드 영화들과 달리 영국 작가의 원작답게 영국군의 활약을 그린 2차 대전 전쟁영화다. 감독은 J. 리 톰슨. 제작사는 컬럼비아 트라이스타 픽처스. 당시로서는 저렴한 제작비인 600만 달러로 만들어졌고 2900만 달러 가까운 흥행을 거둬들였다.
캐스팅은 하나같이 당대의 톱스타들인데다가 주인공 맬러리 영국 육군 대위 역의 그레고리 펙이 굉장한 미남파워를 뽐낸다. 특공대 영화류의 걸작인데다 일종의 모델이 되어 특수부대원과 기술자 등등 개성 넘치는 인물들이 소수로 잠입하여 다 때려 부수는 영화류에 큰 영향을 끼쳤다. 50년이 훌쩍 넘은 지금 다시 봐도 재미있는 고전 전쟁영화의 명작이다.”
위의 설명처럼 그레고리 펙을 내세우고 있지만 다른 배우들 또한 부족함 없는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다. 내용도 “특공대 영화”의 시조-원조 격이고 “일종의 모델”이며 “개성 넘치는 인물들이 소수로 잠입하”는 영화들에 “큰 영향을 끼쳤다”니 그 원형은 어땠는지 알아가면서 보는 재미도 있다.
영화 자체가 갖고 있는 재미와 매력도 충분하지만 좀 더 세밀하게 각각의 등장인물들을 살펴봐도 무척 흥미롭게 보게 된다.
“다른 영화에서 별명이 '프로페서'인 만능 엔지니어가 나온다면 이 캐릭터의 오마주이다. 이전 대사를 통해서 전쟁 전에는 대학에서 교편을 잡았고 프랭클린과 절친이라고 한다. 절친을 속임수로 잡히게 한 일 때문에 맬러리에게 앙심을 품는다. 후술할 안나에 대한 처리를 두고 맬러리와 하는 설전은 영화의 명장면이다. 전쟁에 참가한 사람들의 고민을 담는다는 점에서 격조 높은 장면이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폭약 전문가는 그 출중한 능력 때문에(그리고 평소에도 보여주는 까칠함 때문에) 별다른 잔소리를 듣진 않지만 책임지기 싫어하고 반항기가 가득해서 다루기 쉽지 않은 사람으로 보여준다.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은 해야 직성이 풀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나쁜 성격이라고 말할 순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겉돌거나 동료와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도 아니고. 좀 건방져 보여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동료를 아끼고 임무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런 성향의 등장인물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그를 통해서 특공대 내부에서 갈등이나 의견충돌을 만들어내어 느슨함 없이 긴장감을 갖도록 해주고 있다.
또한, “이름만 봐도 살벌한 칼잡이. 총보다는 단검으로 수많은 독일군의 목을 땄다는 전설 때문에 특공대에 선발되었다. 무려 스페인 내전 때부터 참전한 베테랑이지만 현재는 PTSD를 심하게 앓고 있는 중이다. 칼로 상대방을 찔러서 죽이는 것만큼 냄새와 소리가 들린다며 죽이는 것을 거부한다. 하지만 맬러리 대위는 그저 죽여! 죽여! 를 연발하면서 죽이는 것이 정의라고 몰아세우고 얼렁뚱땅 넘어간다. 작전 종료 후 타고 갈 크릭스마리네(독일 해군)의 보트를 탈취하다가 보트에 있던 독일 수병과 격투 중 칼에 찔려 사망한다. 아마 나바론의 요새가 리메이크된다면 재해석될 가능성이 높은 캐릭터다. 당시에는 PTSD고 뭐고 없었으니 괴상한 결론이 나버렸겠지만...”
한때는 도살자처럼 사람을 죽였지만 어느 순간부터 누군가를 죽인다는 것에 큰 부담감과 괴로움을 겪고 있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는 등장인물도 있는 등 당시로서는 무척 획기적이라 할 수 있는 등장인물이 즐비해 무척 볼만하고 흥미로운 내용과 구성을 보여주고 있다. 오래된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그들이 참여한 작전이 난공불락의 요새를 폭파시켜야 하다는 불가능에 가까운 임무고 그걸 어떤 식으로 해낼 수 있는지 보여주는, 어떻게 본다면 식상하고 흔한 내용이겠지만 발표 당시에는 이런 식의 영화가 (아마도) 없었기 때문에 무척 빠져들었을 것 같다. 당시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얼마나 짜릿한 재미를 느꼈을까? 지금 봐도 재미나니 그때는 더 열광했을 것 같다.
위에 언급한 등장인물 말고도 “(주인공이) 이전에 수행한 임무 때문에 독일군의 보복으로 아내와 아이들을 잃게 된 악연이 있고 네놈은 내가 죽이겠다고 공언한” 친구이자 동료면서 동시에 위협의 대상도 등장하고, 작전 중 부상으로 조금씩 생명을 잃어가는 특공대 대장의 안타까운 처지도 있다. 또한, 저항 조직을 이끌고 있는 여성과 “말을 못한다는 것도 거짓말이었으며, 사실은 고문을 당할 것이 두려워서 독일군 측에 전향”한 배신자까지 무척 다양한 개성을 갖은 등장인물들로 채워져 있다. 특히, 배신은 했지만 단순하게 실망-원망으로 끝내기는 어려운 모습 등 다른 영화에서는 단순하게 다뤄졌을 내용도 조금씩은 세심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에 무척 매력적인 영화였다.
배신자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지를 두고 다투는 장면은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면서 그 이전까지의 진행도 그리고 이후의 진행도 크게 헐거운 점 없이 무척 재미나게 진행하고 있다.
개성 있는 등장인물들과 나무랄 것 없는 멋진 이야기로 꾸며진 아주 매력적인 영화였다.
참고 : “그레고리 펙은 촬영장에서 시나리오 작가에게 이런 농담을 던졌다. "이건 비극적인 게이 영화 같군요. 맬러리는 스타브로스키를 사랑하고, 밀러는 프랭클린을 사랑하지만, 마지막에 스타브로스키는 마리아와 맺어지고, 맬러리는 밀러와 맺어지네요." 그러자 시나리오 작가는 "이런, 눈치 채셨군요!"라고 재치 있게 맞받아쳤다”고 한다. 그레고리 펙은 생기기도 잘 생겼지만 영화를 잘 간파해내는 재주도 있는 것 같다. 부럽다 부러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