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4일간의 설 연휴 동안 총 다섯 편의 영화를 봤다. 유일하게 극장에서 본 [몬스터 헌터]와, 지난주에 아내와 함께 봤지만 아들이 보고 싶다고 해서 설 연휴 기간에 다시 한번 보게 된 [승리호]를 제외하고, 넷플릭스에서 본 [헌트]와 [가타카], 그리고 Seezn에서 본 [비독 : 파리의 황제]에 대한 나의 짤막한 감상평을 남기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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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트] - 잔인한 설정 속에 위트 넘치는 유머가 넘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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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크레이그 조벨

주연 : 베티 길핀, 힐러리 스웽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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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도 모르는 채 납치되어 어딘지도 모르는 초원에 재갈이 물린 채로 떨궈진 사람들. 초원 한가운데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나무 상자가 있었고, 그 나무 상자 안에는 새끼 돼지 한 마리와 재갈을 풀 수 있는 열쇠, 그리고 각종 무기들이 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라며 어리둥절해하는데 난데없이 총알이 날라와 납치된 사람들을 저격한다. 겨우 도망친 사람들은 외딴 주유소에 들어가 '이젠 살았다'라며 구조를 요청하려는 순간 주유소 주인인 노부부에게 살해당하고 만다. 한편 처음부터 다른 사람들과 따로 행동한 크리스탈(베티 길핀)도 주유소에 들어온다. 그리고 주유소 노부부의 수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노부부를 처치해 버린다. 크리스탈은 납치된 다른 평범한 사람들과는 달리 전쟁터에서 잔뼈가 굵은 특수부대원 출신. 그녀는 사람들을 모아 놓고 인간 사냥을 벌인 이들을 찾아가 잔인하게 복수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기획한 최종 보스 아테나(힐러리 스웽크)와 마주하게 되는데...

솔직히 내가 좋아할 만한 설정의 영화는 아니다. 인간 사냥이라니... 설정 자체가 너무 끔찍해서 [헌트]가 개봉할 당시 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영화이다. 하지만 우연히 TV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서 [헌트]의 대략적인 내용을 봤는데, 평범한 사람들이 이유도 모르는 채 사냥을 당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 아닌, 크리스탈의 복수극이 주요 내용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영화가 크리스탈의 활약을 보여주는 영화라면 액션 영화로 가볍게 즐길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조금은 긴장하며 조심스럽게 [헌트]를 플레이했다.

결과적으로 나는 대만족이었다. 물론 설정은 끔찍하고 장면은 잔인했다. 총에 맞아 얼굴이 날아가고, 수류탄이 터져 온몸이 산산조각이 나고, 차량 바퀴에 깔려 얼굴이 짓이겨지는 등, 크레이그 조벨 감독은 어떻게 하면 잔인하게 죽은 사람들의 모습을 관객에게 보여줄지 고심을 한 것 같을 정도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영화를 재미있게 볼 수 있었던 것은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위트 넘치는 유머 덕분이다. 이렇게 잔인한 영화에 유머라고? 얼핏 이해가 잘 안될 테지만, 사실이다.

도대체 왜 아테나는 사람들을 납치해서 끔찍한 인간 사냥을 벌인 것인가? 시작은 젊은 부자들의 단체 메신저가 유출되면서이다. 정부를 욕하고, 장난처럼 인간 사냥을 언급한 내용이 유출되자 사람들은 부자 좌파들이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납치해서 사냥을 즐긴다며 악플을 달기 시작했다. 이로 인하여 아테나를 비롯하여 단체 메신저에 참가한 그녀의 친구들은 회사에서 맡았던 직을 내려놓는다. 농담을 진담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화가 난 아테나는 '너희들이 원한다면 진짜 인간 사냥을 해주지.'라는 심정으로 적극적으로 악플을 달은 사람들을 납치하여 진짜 인간 사냥을 벌인다.

이 끔찍한 인간 사냥이 벌어진 이유부터가 장난스럽다. 그런데 이 끔찍한 일을 벌이는 사람들의 모습은 더 가관이다. 특히 주유소의 노부부는 주유소를 찾은 사냥감(?)들에게 '지구 온난화는 진짜야.'라고 설교를 하고, 사냥감들을 독살한 그들이 음료수에 들어있는 설탕이야말로 진짜 독이라며 음료수를 마시려는 남편을 부인이 말리기도 한다. 벙커에 숨어 사람들을 저격한 이들은 무슨 레포츠를 즐기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설정은 끔찍한데 이를 실행하는 이들이 장난 같다 보니 오히려 끔찍한 설정이 우습게 느껴졌다.

그중에서도 하이라이트는 크리스탈과 아테나의 최종 대결. 사실 아테나 일당에게 악플을 단 것은 크리스탈과 같은 마을에 사는 동명이인이었다. 결국 아테나는 크리스탈을 잘못 납치한 것인데 서로 살벌한 결투를 벌인 후 죽어가는 아테나는 크리스탈에게 진실을 묻는다. 그리고 진실을 알게 된 아테나의 마지막 한 마디는 'oops'이다. 이 장면에서 결국 나는 박장대소를 터트리고 말았다. 이 모든 소동은 오해에서 시작되어 오해로 끝을 맺는다.

이는 마치 극우 세력인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으로 인하여 벌어진 미국의 이념 갈등을 빗댄 것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올바른 척 하지만 결국 자신의 이익에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좌파(아테나 일행)와 무식한 음모론자 우파(납치된 사람들)는 서로에 대한 오해와 불신으로 전쟁을 벌이다 결국 동반 몰락한다. 트럼프가 트위터에서 이 영화를 비난한 이유가 이해가 되기도 했다. 그렇기에 [헌트]는 그저 그런 B급 액션 영화일 수도 있지만 내게는 트럼프 시대를 반영한 위트 넘치는 액션 영화처럼 느껴졌다. 뭐 어찌 되었건 이제 트럼프 시대는 막을 내렸으니 이 또한 언젠가는 '그땐 그랬지'라며 어이없는 웃음을 지으며 회상하는 날이 올지도. 그런 날이 온다면 [헌트]도 함께 회자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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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독 : 파리의 황제] - 아무런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 프랑스 시대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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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장-프랑소와 리셰

주연 : 뱅상 카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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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후반 프랑스. 나폴레옹이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올라 격동의 시대를 맞이한 파리에는 온갖 범죄가 들끓었다. 이에 전설적인 탈옥수인 '비독'(뱅상 카셀)은 사면장을 조건으로 경찰에 협력하여 범죄와의 전쟁을 벌인다. 하지만 파리의 뒷골목을 장악한 벵거(오거스트 딜)의 반격도 만만치 않은데... 결국 '비독'은 동료들과 사랑하는 여인 아넷(프레야 메이버)을 잃게 된다. 경찰의 사면장도 받지 못한 채 모든 것을 잃은 '비독'. 이제 그는 벵거에게 마지막 복수를 감행한다.

내가 [비독 : 파리의 황제]를 기대한 이유는 단 한 가지뿐이다. 2001년 국내에 개봉한 피토 프 감독의 영화 [비독]을 재미있게 봤기 때문이다. [비독]은 18세기 파리의 영웅 '비독'(제라르 드 파르디유)과 거울 가면을 쓴 연쇄 살인마의 대결을 다른 영화인데 판타지한 설정과 미스테리한 내용 전개로 나에게 영화적 재미를 안겨줬다. 나는 당연히 [비독 : 파리의 황제]가 [비독]의 리메이크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비독 : 파리의 황제]는 [비독]의 리메이크가 아니었다. 실존 인물인 '비독'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까지는 같지만 그 외에는 비슷한 구석이 조금도 없으니까.

[비독 : 파리의 황제]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실존 인물인 '비독'에 대해 소개하겠다. '비독'의 정식 이름은 외젠프랑수와 비도크. 1775년에 태어나 1857년 죽은 프랑스의 괴도이자 탐정이다. 그는 원래 범죄자였지만 경찰을 도와 평생 동안 무려 2만여 명에 가까운 범죄자를 체포한 역사상 최초의 사립 탐정이기도 하다. 장 발장, 아르센 뤼팽, 몽테크리스토 백작, 셜록 홈스 등의 모델로도 알려져 있다.

2001년에 개봉한 [비독]이 실존 인물 '비독'을 모티브로 한 판타지 영화라면, [비독 : 파리의 황제]는 '비독'의 일생을 제법 그럴듯하게 재구성한 시대극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그 방식이다. '비독'은 벵거의 도움으로 감옥에서 탈옥한 후, 비단장수로 위장하여 생활하다가 경찰에 신분이 노출되자 범죄자들을 대신 잡아 주겠다는 거래를 한다. 그런데 그러한 과정이 별다른 감흥 없이 단순하게 나열되어 있다. 범죄자였다가 경찰의 앞잡이가 된 '비독'이라는 인물에 대해 심층적으로 들어갈 생각 자체를 하지 않고, 잘 알려진 '비독'의 일생을 나열하듯이 관객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뿐이다.

그러다 보니 영화는 굉장히 심심하다. 18세기 파리의 풍경은 잡아낸 영상미는 좋았지만 캐릭터도 밋밋하고, 스토리 전개도 굴곡이 없다. 그렇다 보니 '비독'의 대항마로 등장한 것이 벵거이다. 솔직히 '비독'이 어떻게 그 수많은 범죄자들을 손쉽게 잡았는지도 영화에서 안 나오지만, 벵거가 어떻게 '비독'에게 잡히지 않고 오히려 '비독'의 동료와 애인을 죽였는지도 영화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그저 [비독 : 파리의 황제]에게 필요한 것은 벵거의 등장으로 심심하기만 한 영화의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것뿐이다. 하지만 벵거가 '비독'의 동료와 애인을 죽였다는 설정만으로 분위기가 올라가지 않는다. 속 알맹이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영화의 후반부. '비독'과 벵거의 마지막 대결은 그래서 허탈하다. 그냥 기계적으로 벵거를 향한 '비독'의 복수에 쾌감을 느껴보라고 관객에게 채근하지만 단순한 나열식 스토리 전개 때문에 마지막 복수의 쾌감은 좀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복수를 마친 '비독'의 표정처럼 영화가 끝난 후에도 나의 표정은 무덤덤할 뿐이다. 이럴 거라면 차라리 [비독]처럼 실화는 집어치우고 전설이 된 실존 인물 '비독'에 대한 판타지로 영화를 채우는 것이 더 나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같은 '비독'을 소재로 한 영화이면서도 최근에 개봉한 [비독 : 파리의 황제]보다 20년 전에 개봉한 [비독]이 더 재미있게 느껴지다니... 확실히 나의 영화 취향이 조금 올드 하긴 한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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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타카] - 통제된 유토피아는 과연 인간에게 행복을 안겨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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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앤드류 니콜

주연 : 에단 호크, 우마 서먼, 주드 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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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미래. 인류는 인공 수정을 통해 우성인자만 물려받은 아이를 출산하게 하는 기술을 발전시켰다. 그 결과 자연 분만으로 태어난 아이는 열등하고, 인공 수정으로 태어난 아이는 우수하다는 인식이 생겨난다. 빈센트(에단 호크)는 자연 분만으로 태어난 아이였다. 어려서부터 우주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열등한 빈센트가 우주 항공 회사 '가타카'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은 청소부로 일하는 것뿐이다. 꿈을 이룰 수 없다는 좌절감에 빠진 빈센트는 불법적 거래를 통해 우수한 DNA를 가졌지만 교통사고로 하반신 불구가 된 제롬 머로우(주드 로)의 신분을 취득하여 '가타카'에 들어가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다.

그가 오랫동안 꿈꾸었던 토성 비행 일정이 확정된 날, '가타카'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경찰은 살인범을 잡기 위해 수사를 벌인다. 경찰은 살인범으로 한때 청소부로 일했다가 갑자기 자취를 감춰버린 빈센트를 유력한 용의자로 특정한다. 경찰의 수사망이 조여오는 가운데 빈센트는 '가타카'의 동료 아이린(우마 서먼)과 사랑에 빠진다. 토성 비행 일자를 다가오고, 경찰의 수사망은 빈센트의 턱 밑까지 다가온 가운데 결국 빈센트는 자신의 신분을 들키고 만다. 하지만 꿈을 향한 집념을 멈출 수 없었던 빈센트의 열정으로 그의 토성 비행은 결국 이루어진다.

설날 연휴의 마지막 영화로 [가타카]를 선택한 이유는 순전히 아들을 위해서였다. 내가 아들에게 적극 추천한 [비독 : 파리의 황제]를 봤으니 (안타깝게 재미있게 보지는 못했다.) 이번엔 아들이 보고 싶다는 [가타카]의 차례였던 것이다. 1998년 개봉작인 [가타카]는 나 역시 굉장히 재미있게 본 영화인데, 우성인자로만 이루어진 인공수정 아이의 탄생이라는 설정이 당시에는 획기적이면서도 미래에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23년 만에 [가타카]를 다시 보면서 만약 정말 저런 세상이 온다면 어떻게 될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가타카]처럼 우성인자만 물려받은 아이들이 태어난다면 아마도 인류의 문명은 지금보다 훨씬 발전할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폭력성, 질병 등의 안 좋은 유전 인자들을 제거하니 범죄율도 많이 줄어들 것이고, 병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도 사라질 것이다. 대신 우성인자를 갖고 태어난 신인류 덕분에 과학, 문화 등 인간 사회에 필요한 여러 가지들이 급속도로 발전할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런 사회에서 인간은 행복할까?

가끔 유토피아를 그린 영화들을 보면 강한 통제가 기본 전제 조건이 되곤 한다. 정해진 틀에 따라 정해진 방식대로 사람들이 행동을 함으로써 우리가 사는 사회는 아주 반듯해질 것이다. 하지만 그런 유토피아를 보는 관객은 숨이 막힌다. 그리고 영화 속의 정해진 틀을 깨는 주인공에게 열광하게 된다.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각자의 개성을 갖고 정해진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삶을 살 때 인간의 행복은 극대화된다. [가타카]에서도 사람들은 어딜 가든 혈액 검사를 해야 하고, 혈액 검사를 하면 그 사람의 인적 사항이 주르륵 공개된다. 그 장면을 보던 아내는 '저런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도 아무리 유토피아라고 할지라도 저렇게 통제된 사회에서는 살고 싶지 않다.

다르게 생각하면 분명 빈센트는 편법을 이용한 사기꾼이다. 영화 후반부 형사가 된 빈센트의 동생 안톤(로렌 딘)은 형을 체포하려 한다. 하지만 빈센트는 강력하게 반발한다. 사람들은 열등한 유전자를 갖고 태어난 빈센트를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이라며 정해진 틀에 따라 벽에 가두었다. 하지만 빈센트는 강한 정신력으로 모든 것을 이겨내고 결국 자신의 실력으로 완벽한 토성 비행 계획을 만들어 낸다. 그것은 유전자의 힘이 아닌 빈센트 본인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결과이다. 그것이 바로 인간이 가지고 있는 긍정적인 힘이다.

23년 전 영화이지만 [가타카]는 참 잘 만들어진 영화이다. 영화의 주제도 좋았고, 제한적인 특수효과만으로 통제된 미래사회를 만들어낸 앤드류 니콜 감독의 천재성도 돋보였다. 특히 젊은 시절 에단 호크, 주드 로, 우마 서먼을 보는 것은 색다른 재미이다. 그때 그들은 정말 눈부시게 멋지고 아름다웠다. 영화의 마지막 토성 비행을 떠나는 빈센트에게 제롬의 건넨 한마디는 참 인상적이었다. "난 너에게 몸을 빌려줬을 뿐이지만, 넌 나에게 꿈을 주었어." 완벽한 우성 인자를 갖고 태어난 제롬. 하지만 꿈이 없었던 그는 불행했고, 열등한 유전 인자로 태어난 빈센트는 꿈이 있었기에 행복했다. 결국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꿈을 결코 포기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지금 나는 어떤 꿈을 꾸고 있나? [가타카]를 보며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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