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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비규환] - 당차게 달려나가다가, 갑자기 후회하며 되돌아온다.
13  쭈니 2021.02.05 15:12:29
조회 153 댓글 0 신고

감독 : 최하나

주연 : 정수정, 장혜진, 최덕문, 이해영

대학생인 토일(정수정)은 해외에서 살다 와서 1년 유급이 된 고딩 과외 제자 호훈(신재휘)과의 사이에서 임신을 하게 된다. 임신 5개월 차. 당당하게 자신의 블록 해진 배를 내밀며 호훈과의 결혼을 선언하지만 토일의 어머니인 선명(장혜진)과 의붓아버지인 태효(최덕문)는 그저 어이없어할 뿐이다. 이에 토일은 과감하게 고향인 대구로 가출을 선택한다. 얼굴조차 알지 못하는 친아버지 환규(이해영)를 찾아... 그러나 환규의 실망스러운 모습만 확인하고 서울로 올라온 토일. 그런데 이번엔 호훈의 행방이 묘연하다. 호훈은 어린 나이에 아빠가 되는 것이 두려워 도망친 것일까? 내 인생은 내가 선택하겠다며 당당하기만 하던 토일도 이제 슬슬 겁이 나기 시작한다.

[애비규환]은 참으로 당돌한 영화이다. 영화는 어린 나이에 원치 않은 임신을 한 미혼모를 소재로 택하였지만, 기존의 미혼모 소재의 영화가 가지고 있는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경제적 어려움 등을 담기보다는 출산 후 5개년 계획까지 준비한 토일의 당당한 캐릭터를 통해 미혼모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깨뜨리려 한다. 자신의 임신에 대해 '뭐 어때?'라며 오히려 담대하게 대처하는 토일의 모습은 내가 [애비규환]을 기대작으로 설정해 놓았다가, Seezn에서 프라임무비팩으로 풀리자마자 곧바로 보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솔직히 평가한다면 나는 [애비규환]에 그다지 높은 점수를 주고 싶지는 않다. 여성 신인감독은 최하나는 분명 토일이라는 독보적인 미혼모 캐릭터를 탄생시켰지만 제대로 활용하지는 못한다. 부모의 결혼 반대에 부딪힌 토일이 가장 먼저 선택한 행동은 바로 친아빠인 환규를 찾아 나서는 것이다. 왜 하필 친아빠 찾기일까? 그 이유에 대해 토일조차도 명확하게 설명하지는 못한다. 그저 막연한 당김이라고나 할까?

영화의 제목이 차마 눈뜨고 보지 못할 참상이라는 뜻의 사자성어 '아비규환'을 살짝 변형시킨 '애비규환'이라는 점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결국 [애비규환]은 토일의 심상치 않은 성격과 행동력이 어린 시절 이혼한 엄마에 대한 반항심과 부성애 결핍이라고 설명한다. 영화는 대구에서 친아빠를 찾아 나선 토일이 의붓 아빠인 태효에 대한 사랑을 깨닫는 과정을 중간중간 담아내는데, 이를 통하여 대학생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중2병을 벗어나지 못했던 토일의 정신적 성장을 그려낸다. 이제 토일은 정신적 성장을 통해 엄마라는 숭고한 존재가 될 준비가 된 셈이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그 순간 발생한다. 당당하기만 하던 토일. 그런데 대구에서 돌아와보니 호훈이 잠적해 버렸다. 토일의 가족은 물론 호훈의 가족까지 총출동하여 호훈을 찾기 위한 소동을 벌이는데 사실 사건의 진상은 별거 없다. 그런데 호훈의 잠시 동안의 잠적만으로도 토일은 무너진다. 아빠가 엄마와 자신을 버렸듯이 호훈도 자신과 뱃속의 아기를 버리면 어쩌나?라는 두려움에 휩싸인다. 영화 초반 당당하던 토일의 유쾌한 캐릭터가 한바탕 소동을 겪은 이후 겁에 잔뜩 질려 버린 전형적인 미혼모 캐릭터로 회귀한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토일이라는 독보적인 미혼모 캐릭터는 평범해진다. 내가 [애비규환]은 기대한 이유가 물거품처럼 사라진 것이다.

25년 전, 아는 지인 중에서 미혼모가 있었다. 시골에서 홀로 상경하여 서울의 작은 회사의 경리로 일하던 20대 초반의 그녀는 회사 사장과의 관계로 임신을 했고, 결국 버림을 받았다. 교회의 지원 속에서 혼자 두려워하며 출산을 기다리던 그녀의 모습은 내 기억 속에 강력하게 남아, 미혼모는 힘없고 불쌍한 희생자라는 이미지를 남겨줬다. 나는 [애비규환]이 그러한 나의 선입견을 완벽하게 깨뜨려 주기를 바랐다. 세월이 흘렀고, 시대가 바뀌었다. 그렇다면 이제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개척할 수 있는 당당한 미혼모가 나타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아쉽게도 [애비규환]은 내가 기대했던 수준까지의 인식 변화를 보여주지는 못했다. 그래도 유쾌한 영화의 분위기 덕분에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영화는 될 수 있었다. [애비규환]을 보며 불쌍하게만 보였던 25년 전 그녀도 성인이 된 자식과 함께 지금은 행복하게 잘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디 정말 그렇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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