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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영화란 이런 것? [후쿠오카], [큐리오사]
13  쭈니 2020.11.25 08: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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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내 취향은 다분히 대중적이다. 젊은 시절 한때 치기에 어려 국제 영화제 수상작들을 골라 본 적도 있었지만 결국 내 취향이 아니라는 사실만 깨달았다. 그래도 아주 가끔은 영화제 수상작, 혹은 거장의 영화들을 챙겨 본다. 다른 이유는 없다. 그저 장르적 법칙에 충실한 상업 영화만 보면 조금 질리기 때문에 가끔은 장르적 법칙에서 벗어난 영화들로 머리를 식히는 것이다. 이번에 본 [후쿠오카]와 [큐리오사]가 바로 그러했다.


[후쿠오카] - 두 남자와 한 여자의 이상한 여행, 그리고 확실히 이상한 결말

감독 : 장률

주연 : 권해효, 윤제문, 박소담

아무도 찾지 않는 대학가의 낡은 서점을 운영하는 제문(윤제문)에게 유일한 단골 소담(박소담)이 불쑥 함께 '후쿠오카'로 여행 가자고 말한다. 내가 왜 너와 '후쿠오카'에 가냐며 소담의 제안을 무시하던 제문에게 28년전부터 소식이 끊긴 선배 해효(권해효)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서점을 아무리 둘러봐도 해효는 없는데 도대체 어디에서 나는 소리지? 제문은 해효가 '후쿠오카'에 살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결국 소담과 함께 '후쿠오카'로 떠난다. '후쿠오카'에서 해효와 만난 제문. 하지만 해효는 제문과 화해를 할 생각이 없다. 친한 선후배 사이였던 해효와 제문은 28년전 순이라는 여성을 동시에 사랑하는 바람에 사이가 틀어진 것. 이후 순이는 자취를 감추고, 해효는 순이의 고향인 '후쿠오카'에서, 제문은 순이가 자주 가던 서점에서 하염없이 순이를 기다렸던 것이다. 28년 전 과거에 얽혀사는 해효와 제문, 그리고 도대체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담은 '후쿠오카'에서 아주 이상한 여행을 경험한다.

재중동포 출신 장률 감독은 국내에서도 꽤 인지도가 높은 감독이다. 초창기 중국에서 만든 [망종]으로 좋은 평가를 받은 후 2008년 윤진서, 엄태웅 주연의 [이리]를 시작으로 꾸준히 국내에서 영화 작업을 하고 있다. 나는 그의 영화 중 박해일과 신민아, 윤진서가 주연을 맡은 2014년 개봉작 [경주]만 봤다. 친한 형의 갑작스로운 죽음으로 그의 장례식장을 찾은 중국 북경대 교수 최현(박해일)이 갑자기 7년전 '경주'에서 보았던 춘화가 보고 싶다며 충동적으로 '경주'로 여행을 간다는 내용으로 특히 영화의 마지막 10분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장면들로 채워져 영화를 보고 나서 영화에 굉장히 혼란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후쿠오카]가 딱 그러하다.

사실 중반까지는 꽤 재미있었다. 여자 문제 때문에 28년 동안 연락을 끊고 지냈던 다 큰 어른이지만, 철없는 어린 아이처럼 보이는 해효와 제문의 티격태격도 흥미로웠고, 사람인지 귀신인지 아리송한 소담의 정체도 영화에 몰입하게 만들었다. 나는 소담이 귀신이라 생각하며 영화를 봤다. 소담은 마치 제문이 '후쿠오카'에 가야할 것을 미리 알고 있었고, 해효가 운영하는 술집의 단골 손님이 벙어리가 아니라는 것도 꿰뚫어 보고 있었다. '후쿠오카'에서도 중국인, 일본인과 서로 다른 언어로 대화하면서 언어소통이 완벽하게 된다. 그러한 설정은 그녀가 초현실적인 존재라는 암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저 단순히 '소담은 귀신이다'라고 생각하기엔 이상한 점이 너무 많다.

처음엔 소담이 순이의 딸이 아닐까? 생각했다. 아버지를 찾기 위해 제문과 해효에게 접근한 것은 아닐까? 하지만 그러기엔 나이가 맞지 않는다. 순이가 자취를 감춘 것은 28년 전이고, 소담은 21살이다. 그런데 '후쿠오카'의 낡은 서점 주인인 유키(야마모토 유키)가 소담이 1년전 놓고 간 것이라며 인형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소담이 귀신이다'라는 확신이 섰다. 소담은 고등학생이었던 1년전 '후쿠오카' 서점에 인형을 놓고 간 후 죽었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제문의 서점에 소담이 교복을 입고 있었던 것도 그러한 이유가 아닐까? 해효가 2년 전 죽은 '후쿠오카' 서점의 전 주인과 얼마전에 만나 대화까지 나눴다는 장면은 해효와 제문이 귀신인 소담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 대한 설명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면 유키도 귀신일까? 아니면 귀신을 볼 수 있는 사람일까? 유키는 해효, 제문과 함께 소담과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누고, 급기야 뜬금없이 키스까지 나눈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소담은 갑자기 한국에 있는 제문의 서점에 전화를 걸고, 제문의 서점엔 한 남자가 앉아 있다. 그렇게 영화가 끝난다. 그 남자가 누구인지 얼핏 봐서는 알 수가 없다. 화면이 너무 어둡고, 그 남자의 모습이 아주 잠깐 스치고 지나가며 영화가 끝나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게 뭔 의미이지? [경주]를 보고 나서도 딱 이러했는데, [후쿠오카] 역시 흥미롭게 영화를 이끌어 가다가 후반부에 나를 혼란에 빠뜨린다. 그것이 장률 감독의 특기인가?

영화의 마지막 장면 제문의 서점에 앉아 있는 남자의 정체를 알기 위해 몇 번을 돌려봤는지 모른다. 그리고 다른 이의 블로그를 통해 그가 해효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블로그에서는 [후쿠오카]가 해효의 꿈이었고, 소담은 해효의 욕망이 투영된 존재라고 했다. 뭐 그런 설명을 보고나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하긴 모든 영화의 내용이 논리적이고 명확해야할 이유는 없다. 우리는 그저 명확하고 논리적인 내용의 영화에 익숙해진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후쿠오카]를 통해 확실히 깨달은 것은 나는 역시 내용이 명확하고 논리적인 영화가 좋다는 것이다. [후쿠오카]를 본 후 느낀 혼란은 내게 그다지 좋은 경험은 아니었다.


[큐리오사] - 문란한 그녀의 섹스는 시대에 대한 반항?

감독 : 루 주네

주연 : 노에미 메를랑, 니엘스 슈나이더

19세기 파리. 세 자매가 마치 고객의 선택을 기다리는 상품처럼 시인인 앙리(벤자민 라베른헤)의 지목을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앙리는 뜻밖에도 정숙한 첫째 엘렌이 아닌 도발적인 매력을 가진 둘째 마리(노에미 메를랑)을 선택한다. 마리에게 흠뻑 빠져 있는 절친한 친구이자 사진작가인 피에르(니엘스 슈나이더)에 대한 질투 때문이다. 마리 역시 피에르에게 마음이 있지만 그녀에겐 선택권이 없다. 그렇게 마리는 앙리와 사랑이 없는 결혼을 하게 되고, 피에르는 알제리로 떠난다. 시간이 흘러 알제리에서 조흐라(카멜리아 조다나)와 함께 귀국한 피에르는 조흐라의 누드 사진을 찍으며 예술적 영감을 불태운다. 바로 그때 마리가 앙리 몰래 피에르를 찾아 온다. 그리고 스스로 피에르의 누드 사진 모델이 되겠다고 자청한다. 그날 이후 피에르와 마리는 연인으로 발전하고, 아내의 외도를 눈치챈 앙리는 모든 것을 감수하며 모르는 척 한다.

영화의 내용만 놓고 본다면 [큐리오사]는 3류 막장 드라마처럼 보인다. 사랑하는 남자 피에르와 결혼하지 못한 마리가 대놓고 바람을 피우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큐리오사]는 여기에 한술 더 뜬다. 마리와 피에르의 사랑은 단순한 불륜을 넘어서 문란한 섹스로 변질되는데, 영화 후반부엔 피에르가 마리의 동생인 셋째 루이즈와 결혼을 하게 되고, 피에르와 마리, 그리고 루이즈는 함께 섹스를 공유한다. 이쯤되면 아무리 우리나라 막장 드라마가 최강이라 할지라도 [큐리오사]의 막장에는 무릎을 꿇을 지경이다.

영화의 제목인 '큐리오사'는 외설적인 책이나 사진을 뜻하는 것인데 그러한 제목은 마리와 피에르의 작업과도 맞닿아 있다. 피에르의 직업은 누드 사진 작가라고는 하지만 솔직히 그의 사진은 자신의 개인적인 성적 쾌감을 위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피에르와의 문란한 경험을 글을 쓴 마리도 마찬가지이다. 과연 그것을 예술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저 외설적인 책이나 사진, 즉 '큐리오사'라고 칭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영화의 노출 수위는 상당하다. 처음부터 관음적인 시선으로 영화를 시작하더니 남녀의 성기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장면이 여럿 있다. 피에르의 사진에서는 아예 다리를 쩍 벌리고 있는 여성의 누드 사진도 있다. 그러한 사진들은 마치 흑백의 포르노 사진을 보는 것만 같다. 흥미로운 것은 이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루 주네 감독은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자막으로 피에르 루이와 마리 드 레니에의 사진과 편지를 토대로 했다고 소개한다. 마리와 피에르의 관계가 영화에서처럼 막장인지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두 캐릭터가 실존 인물이라는 것 자체만으로도 상당히 놀랍다.

지난 6월 본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던 노에미 메를랑의 연기는 좋았다. 사실 내가 뜬금없이 내 취향의 영화도 아닌 [큐리오사]를 보겠다고 결심한 것은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에서 노에미 메를랑의 연기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큐리오사]는 노에미 메를랑의 매력을 느끼기에 더할나위없이 좋은 영화이기도 하다. 노출씬이 너무 많이 나오긴 하지만, 자신의 성적 욕망을 억눌러야 하는 19세기 유럽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욕망을 발출시키는 마리의 캐릭터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솔직히 [큐리오사]에 대한 나의 감흥은 '노에미 메를랑이 매력적이다.' 뿐이다. 마리와 피에르의 뻔뻔한 불륜을 루 주네 감독은 억압받는 여성의 시대에 대한 반항과 연결하려한 것은 이해가 되지만 표현 수위가 도를 넘어서서 나에게는 캐릭터에 대한 반감을 불러 일으켰다. 특히 마리가 동생인 루이즈와 피에르를 공유하는 장면은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스럽기도 했다. 사랑하는 피에르가 죽고, 인기 작가로 등극한 마리가 행복한 미소를 짓는 장면을 보며 과연 마리가 피에르를 진정으로 사랑했는지도 의심스럽다. 내가 너무 보수적인가? 뭐 그럴지도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큐리오사]는 내 정서와는 별로 맞지 않는 영화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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