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길을 달리다 나타난 자전거 도로는 100여M 를 끝으로 운명을 다하고 사라져 버렸다. 자전거 도로가 나와서 잠시 좋아라 하고 있었는데 허무하다. 그래도 다행히 25번 국도 산길은 해가 지기전에 벗어날 수 있었다. 그 다음 만난 도로는 163번 도로. 163번 도로까지 가면 숙소를 잡아야지 했던게 마음속으로 정한 목표였는데 25번과 163번이 만나는 곳은 우에노(上野) 였다. 우에노는 제법 큰 마을이었는데, 도착한 시간은 5시가 조금 넘은 어두워지기 시작한 시간이었다. 일단 큰길을 달리며 두리번 두리번 여관을 찾았지만, 당연히 눈에 띄는 여관이 없어서 조금더 달리기로 했다. 계속 산길을 달리다 마을을 하나 만나니 긴장이 풀렸나? 앞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면서 어둠이 내리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더 달리기로 한것이다. 사실 난 계속 마을이 있을거라 생각했다. 많아야 5Km 만 달리면 마을이 있겠거니 하고 룰루랄라 앞으로 향한것인데, 마을은 커녕 난데없이 산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래도 조금만 달리면 마을이 나오겠지 하는 맘으로 계속 전진을 했으나, 완전한 어둠이 내리고서야 근처에 마을이 없다는걸 알수 있었다. 사방이 컴컴하고 가로등도 없고 앞뒤좌우 살펴봐도 불빛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상황이 되서야 말이다. 아~오늘도 사서고생이구나 하는 생각으로 무작정 달리기 시작. 하지만, 그게 그리 쉬운게 아니었다. 계속해서 트럭들은 지나 다니고 가로등도 자전거 도로도 없는 산길에서 자칫 삐끗 해서 옆길로 떨어지기라도 하면 그날로 사망! 일지도 모르는 상황. 정말 후달린다. 그제서야 지도를 빼서 살펴보니 대충 25Km 는 더 가야 큰 마을이 나올거 같다. 조금더 달리니 그나마 다행히 저녁 먹을 식당이 하나 나와 준다. 저녁도 먹을겸 들어가서 물어보니 아까 지나온 우에노로 가든지 아니면 '나라' 까지 가야 한단다. (나라가 어디고 우에노가 어디냐면 저~ 밑에 지도 올렸으니 보시라 ㅋ) 나라는 40Km 는 더 달려야 갈까 말까한 거리. 뭐. 길만 좋다면서 까잇거 가는거 별 문제 없다만, 이런 산길로 40Km 는 커녕 당장 5Km 달리는것도 무리다. 그래서 혹시나 하고, 기차역이 있나 물어보니 바로 근처에 있단다. 스캉 드디어 기차를 타게 생겼다. 아니 기차를 타야만 한다. 이런 외진 산길에서 죽을 수는 없지 않는가! 식당아저씨는 자전거 타고 가면 되는데 뭔 걱정 이냐는 듯한 표정을 지으신다. ㅎㅎ 그렇기는 한데 난 무섭단 말이지요.

그래서 밥을 먹고 나와 역으로 향했다. 이런 산골에 기차역이 있다니 거참 신기하다. 역은 아주 작은 간이역 같은 역이었다. 배차간격도 꽤 길고 차표 파는 사람도 없고 차 기다리는 사람도 없는 아주 조용한 역이었다. 정말 기차가 있기는 할걸까? 시간표를 보니 기차가 있기는 한거 같은데 어찌 사람한명 없는건지. 역 주변으로 민가가 좀 있기는 했는데, 그냥 노숙을 할까? 그러다 곰이라도 나오면 어쩌나 싶어 기차를 기다려 보기로 했다. 우선 자전거를 접어서 가방에 넣고 시간표를 보니 약 20분후에 기차가 있다고 돼 있다. 그래 기다려 보는 거다.
시간표에 적히 시간에 도착한 기차는 달랑 2칸짜리 기차였다. 기차라기 보다 유럽에서 보던 트램같은 분위기였는데, 2칸짜리 기차에 운전하는 사람만 있어서 표 받는 사람은 따로 없고 기계만 있었다. 그냥 양심에 맡기는 가 보다. 그런데 이거 어떻게 하는거지?

 

 

전에 기차는 아니지만, 버스는 타 봐서 대충 알기는 아는데, 감시하는 사람도 없고 에라 모르겠다 그냥 무임승차 해야 겠다. 기차에 있던 사람들은 짐 잔뜩 들고 타는 날 한번씩 쳐다 보더니 다시 조용히 하던일들을 하신다. 대부분 고된 일상에 지쳐 보였다.

 

자 그런데 어디까지 가야하지? 노선도를 보니 이 기차 '나라' 까지 가는거 같다. 그냥 확 '나라'까지 가 버릴까? 최소한 나라까지는 가야 여관이든 호텔이든 있는게 확실한데 말이다. 그렇긴 한데, 기차를 탄 이유는 당장 산길을 벗어나고자 한것이니 산길만 벗어나 좀 큰 마을이 보이면 내리기로 했다. 그래서 내린곳이 '카모' 였다. 일본에선 보기 드문 아파트로 보이는 높은 건물이 보이길레 얼릉 내렸다. 헉 그런데 내리는 곳은 좀 큰역이라서 그런지 사람이 지키고 있다. 일단 탈때 표를 뽑기는 했으니 이걸 보여주고 돈을 내면 되는 걸까? 잠시 고민하다가 일단 짐 부터 밖으로 내 놓기로 하고 울타리 너머로 당당하게 짐을 내 놓는데,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래서 짐을 내 놓고, 한쪽으로 나 있는 길로 그냥 아무일 없듯이 나왔더니 잡지도 않는다. 아무튼 무인 승차는 성공이다. 고작 3~400엔 정도 하겠지만 암튼 땡 잡았다.

자 그런데! 내 생각이 짧았다. 우리나라야, 뭐 주택가라고 해도 여관 하나쯤 찾는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테지만, 여기는 일본이란 말이다. 주택가에 여관이 있을리가 없었다.

 

마침 지나가는 할머니가 계셔서 물어보니 없다고 하신다. '나라' 에 가면 있을거라고 하시는데 자전거를 보시더니 이거 난처하게 됐구만 하시는 표정이다. 마침 저 멀리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우리쪽으로 오고 있었는데, 그 사람들 올때까지 기다리시다 그 사람들에게 물어봐 주신다. 역시나 대답은 '나라' 에 가면 있을거라는 답. 그러더니 어느 나라 사람이냐 어디서 부터 자전거를 타고 왔느냐 등등을 물어보더니 자기를 따라 오라고 한다. 근처에 여관이 있나? 아님 민박집이라도 있는가 보다 하고 뒤를 따라 가는데, 여관도 민박도 아닌 본인들 집으로 들어가더니 잠시 기다리라는 것이다. 그리곤 어디다 전화를 하신다.
'음, 전화로 여관이 어디 있나 알아 보시는구나' 했더니 갑자기 전화기를 나한테 주신다. 그리고 전화기에서 들리는 소리는 반가운 한국말이다. 알고 보니 이집 아주머니 친구중에 한국 사람이 있었고, 내가 한국 사람이라고 하니 날 데리고 온것이다. 결론은 이 집에서 자고 가라는 것. '앗싸! 땡 잡았다!' 사실 유럽여행 가기전까지만 해도 폐 끼치는거 같기도 하고, 또 사실 나도 좀 불편하고 해서 남의 집에서 자고 이런거 절대 안하던 스캉이었는데, 요즘은 이런 기회가 있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그 나라 사람들 어떻게 사는지도 알 수 있고 돈도 아낄 수 있고 또 말은 잘 안 통해도 이런저런 대화도 할 수 있고 얼마나 좋은가.

오늘 내가 잘 집은 2층짜리 단독 주택으로 3대가 같이 사는거 같았다. 안되는 영어와 일본어를 섞어 가며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샤워를 하고 나오니 아까 전화기로 만났던 그 한국분이 와 계셨다. 일본에 온지 20년이 넘으셨다는 그 아주머니는 약주를 좀 하시고 오신 터라 좀 횡설수설 하고 계셨는데, 날 보더니 좀 기분이 상하셨다고 한다.
일본 사람들이 베푸는 친절은 친철이 아니라 동정심이라는 것이다. 한국 사람을 얕잡아 보고 불쌍해서 제워주는것이지 우리내 시골 인심 같은 그런 인심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돈이 없고 자전거 여행하고 여관도 없는 곳에서 여관을 찾고 있는게 불쌍해서 하룻밤 제워주기로 한것이란 것이다. 물론 이집 분들이 말로는 그렇게 표현을 안했지만 아주머니는 그럴것이라고 확신하고 계셨다. 그래서, 불쌍한 한국 사람이 된 날 보니 같은 한국 사람으로서 기분이 나쁘다는 것이다. 하지만 난 별로 기분 나쁘고 할거 까지 없다고 생각한다. 불쌍하게 생각하든 말든 난 내 얻을거 얻고 경험할거 경험할 수 있으니 좋지 뭐. 하면서도 좀 씁쓸하긴 했다.
이집 아주머니가 친구인 한국 아주머니를 부른 까닭은 나와 대화를 하기 위해서 통역이 필요 했기 때문인데, 그 내용의 골자는 괜찮으면 내일 저녁을 같이 하자는 것이었다. 한국 음식 불고기를 먹을건데 같이 가자는 것이다. 처음엔 그렬려고 그랬는데, 아줌마 말을 듣고 보니 이 분위기에서 내가 좋다라고 말하는것도 참 이상하고 해서 그냥 안되다고 했다. 내일 오사카까지 갔다가 다시 와야 하는데 기차타고 오면 되니 어려운건 없지만, 그 핑계로 안된다고 했다. 좀 아쉽기는 하지만 할수 없지